제목 | ◆ 주님께 바치는 뇌물 . . . . . . . . [박희동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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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혜경 | 작성일2006-12-01 | 조회수1,130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사제로서 서품을 받고 첫 본당에 부임, 시골 공소를 방문했다.
성당 지붕은 새고 빛바랜 십자가와 성모상만이 쓸쓸히 성당을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공소를 재건할까? 시골이라 돈도 없고 신자 수도 적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 하나로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한 끝에 생명보험에 들기로 결심했다. 한 달에 2만 원도 못되는 돈을 지금까지 십여 년간 내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 5천만 원이 나오는 보험이다.
가끔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면서 이런 넋두리를 한다.
[주님! 차 사고로 죽으면 공소 하나 주님께 봉헌하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쓸모없이 죽는 것 보다 고기값이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얼마 전에 주교님께서 신부들에게 유언장을 작성하라고 분부하셨다. 나는 보험증서 뒷면에 공소 건립을 우선적으로 명시했다.
지금까지 거룩하게 살지도 못했고... 십여 년 동안 주님께 사제다운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그래서 5천만 원의 보험금으로 주님께 뇌물로 드리고 천국에 갈 수는 없을까..... ? 착각도 해본다.
서울 어느 본당에 가서 공소 신축을 위해 보험금 강론을 했더니, 보험 회사에 근무하는 신자가 항의를 했다. 너무 끔직한 내용이고, 보험회사가 손해를 보는 것이기에 강론이 적당치 못하다는 것이다.
내가 망상을 하는걸까? 그래도 이왕 죽을 바엔 주님께 보탬이 되면 다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도 성당은 광주 대교구에서 공소를 가장 많이 담당하고 있는데.. 좁은 소견일지 모르지만, 주교님께서 농촌 사목에 적합한 나의 촌스러움(?)과 어수룩한 장점을 높이 배려하신 것이라 생각하고... 촌놈 신부로서 자부하고 있었다.
신학생 때는 [시골 신부]의 대명사인 비안네 신부를 동경했고,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에 주인공 치셤 신부가 멋지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 나이 40이 넘어도 자꾸만 [가짜 비안네 신부][가짜 치셤 신부]가 되어가는 것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뭐니뭐니해도 시골 신부로서의 보람과 매력은 [그놈의 정] 때문이다. 멀리 떠났던 아들이 돌아오는 것처럼 애타게 기다리는 공소 교우들을 방문하면 찐 고구마, 옥수수, 바다에서 물질해 온 낙지. 운저리. 미역 등이 구미를 돋구며 기다리고 있다.
성탄 때 공소 방문을 하면 많은 추수감사의 뇌물(?)이 초라한 제대 밑에 어지럽게 쌓여 있다. 미사 후에는 [진도 아리랑][마음 약해서]등 유행가가 뒤따르고 나의 애창곡인 [일편단심 민들레야]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또한 나의 디스코 춤 실력이 만만치 않아 시골 할머님들의 허리 운동에 꽤나 도움을 주었다고 자부한다...
아싸! 호랑나비!
신부는 유행가도 함부로 못 부르는 신세 한탄이나 해 볼까 한다.
신학 대학을 서른 한 살에 편입하여 늙은 신학생으로 학과 공부하기도 벅찬데, 나는 욕심을 부려 특별 활동으로 첼로, 만돌린, 오르간 연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교 시절에는 흑인 영가를 좋아했고, 일반 대학 다닐 때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느라고 하숙방에서 악보를 뒤적였다.
학창 시절에는 고상하게도(?) 클래식만 상대해야지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사제가 되어 4개 본당을 거치는 동안 귀 동냥으로 못된 노래만 배웠다. 고백하건데, 내가 좀 속되기도 하지만 전부 신자들 탓이리라(?). 왜냐하면 상스러운 것이 대중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진도 아리랑 가사 가운데 [시엄씨 죽으라고 물 떠놓고 빌었더니 친정어매 죽었다고 부고가 왔네. 서방님 오신다고 깨벗고 잤더니 문풍지 바람결에 설사병만 났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얼마나 서민적인가!
주일학교 교사가 자기 애인을 짝사랑하면서 열창했던 [일편단심 민들레야]도 구성져서 좋다.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 하는 [아싸, 호랑나비][희망사항]도 맘에 든다.
얼마 전 부활 성야에 미사를 끝내고 신자들의 성화(?)와 같은 요청으로 [아싸, 호랑나비]를 불렀다. 궁둥이를 뒤로 빼고 비틀비틀 양 손을 휘젓고 춤까지 추었다.
다음 날 아침, 익명의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신부님! 체통 없이 그런 춤을 추다니요? 더구나 성당 안에서 술판을 벌이다니요? 앞으로 조심 하십시오!]
나는 편지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장소가 없어서 신축 중인 건물에서 부활 축제를 지내는데... 신부가 부활절에 고생도 많이 했는데... 궁둥이 좀 흔들었다고 예수님께서 노하실까...?]
[아니다! 귀엽게 봐 주실 것이다!]
더럽게시리... 신부라서 유행가도 못 부르는 신세구나! 언제는 박수치고, 언제는 뒤에서 욕을 하니, 아! 나는 어떻게 할까.... ?
......
......
주님! 외적으로 설치는 신부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시고 '가짜 비안네 신부'가 아니라 '진짜 비안네 신부'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영적으로 성숙하게 지켜 주십시오.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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