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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4 조회수70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 12월 4일 대림 제1주 월요일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마르코 16,15-16)

 

 He said to them, "Go into the whole world

and proclaim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그 누구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 선포의 의무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 복음 선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유언으로 남기신 지상 사명이다


 ☆☆☆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로서 12월 3일에서 옮겨 지냅니다. 성인은 1506년 스페인 나바라의 하비에르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던 중 1534년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 예수회를 창립하였습니다. 당시 서구 열강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를 정복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란치스코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1541년 이냐시오 성인의 권고에 따라 포르투갈령 인도로 첫 선교 활동을 떠납니다.
인도에서 프란치스코는 선교를 어떻게 할지 몰라 단순히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이 방법이 오히려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간직한 채 자신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이끄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가르치기보다는 함께하는 모습을 통하여 주님을 전하였고, 이러한 선교 방법이 원주민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이후 프란치스코는 일본과 중국 선교를 위하여 여행하던 중에 산첸 섬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복음 선포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복음 선포란 주님과 일치한 상태에서 사람들과 편안하게 머무르면서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일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1506년 4월 7일 스페인의 나바라에 위치한 하비에르 성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1525년 화려한 명성을 꿈꾸며 프랑스 파리에서 학문의 뜻을 펼친다. 그러나 1533년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를 만나면서부터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프란치스코는 이냐시오의 설득에 굴복하여 그의 협조자가 되어 오직 한 분이신 임금께 봉사하기로 결심한다. 1534년 이냐시오를 도와 예수회를 창설한다. 프란치스코는 1537년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들과 함께 베니스에서 사제로 서품되고 예수회의 중책을 수행한다.


  성인은 1541년 포르투갈 왕과 교황 바오로 3세의 사절로 당시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서인도의 고아로 파견된다. 13개월의 긴 여행이었다. 서인도에 도착한 성인은 자국의 관리들뿐 아니라 그곳의 가난한 어부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무엇보다 복음을 따라 살도록 가르치고 설교하였다. 1544년까지 성인은 1만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고아를 선교의 거점으로 정한 성인은 인도(1541-43,48,51-52년)와 스리랑카(1544-45년), 몰로카스 제도(1545-47년)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한다. 성인은 가는 곳마다 선교거점을 마련하고 지역민으로 선교단을 조직하였다. 성인은 자신의 선교활동과 상황을 기록하여 편지로 이냐시오 성인과 로마로 보냈다. 성인의 편지들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선교의 꿈을 불태우는 계기가 된다. 1547년 인도의 동쪽에 섬나라 일본이 발견되자, 1549년 일본으로 건너가 1551년까지 가고시마와 교토 등지에 복음을 전한다. 1552년 중국선교를 목적으로 배에 오른 성인은 심한 병을 얻게 되어 상짜오 섬에 도중 하선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은 1552년 46세의 일기로 12월 3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619년 시복되었고, 1622년 시성되었다. 성인은 1748년에 인도의 수호성인으로, 1904년에 믿음전파의 수호자로, 1926년에 가톨릭선교의 수호자로, 1927년에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되었다.

 

  선교의 수호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을 지내면서 1549년 일본에까지 왔던 성인이 한국을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록에 의하면 1542년부터 1552년까지 10년 동안 성인은 3만 명이상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활동이다. 성인이 펼친 동방에서의 선교활동은 동방에서 뿐 아니라 모국인 스페인에도 큰 효과를 가져왔다. 당시 개신교의 종교개혁으로 유럽의 가톨릭교회가 진통을 겪을 때, 스페인의 젊은이들을 분열시킬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성인의 힘이었다고들 한다. 성인의 출생지는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성지(聖地)가 되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의 마지막 부분이다. 성서학자들은 마르코복음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원래 16장 8절로 끝난 것으로 추정한다. 후에 어느 독자(1)가 요한, 마태오, 루가복음, 그리고 사도행전을 바탕으로 부활예수의 발현사화와 승천사화를 덧붙였고(16,9-20), 그 후 또 다른 독자(2)가 거기에다 짧은 결문(16,21-22)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옳다면, 그 독자(1과 2)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읽은 것이다. 마르코복음 16장 8절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메시지를 전해 받은 “여인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고 한다. 그 독자들은(1과 2) 여인들의 닫힌 입을 열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발현하셨고,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복음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복음이 닫힌 입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열린 입을 통해 선포되는 것이다. 복음선포에 일생을 바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본받아 우리도 열린 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야 하겠다.◆

-박상대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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