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일 다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1-6)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his paths. Every valley shall be filled and every mountain and hill shall be made low. The winding roads shall be made straight, and the rough ways made smooth, and all flesh shall see the salvation of God.”
루카 복음사가는 이사야가 예언한 해방이 이루어지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고 하면서 구원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이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려 온 메시아는 단순히 유다인들만의 주님이 아닌,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주님이 되시는 것이다
☆☆☆
그리스 말로 ‘회개’란 단어의 본디 의미는 ‘뒤를 돌아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앞을 내다보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는지에 대한 물음엔 선뜻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열심히 산다고 하는 사람부터 마지못해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까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과 목표는 나름대로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느 하나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채워 줄 만한 대답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이내 허무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왜 살아가며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려면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 달린다. 그러나 길이 아니다.”라는 라틴 말 속담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은 위험천만할 수 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스스로 왜 달리는지 그리고 어디로 달리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 달려 보아야 무의미한 달리기가 될 것입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져다주며, 그동안 간과했던 삶의 모습들을 찾아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
길이 되는 사람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이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 이라는 글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길이 되는 사람’, 그렇습니다. 저도 그 ‘길’이 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요즘 들어 저는 가끔 ‘직무가 그러하다’며 궁색한 변명을 하면서도 자꾸만 가르치려고 하는 제 모습을 반성할 때가 많습니다.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님에도, 선택의 가능성이 다양하게 열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저의 생각이나 느낌을 강하게 내세워 말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가르치려고 하는 장애를 깊이 성찰할 때가 많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그리움으로 깨어 기다리는 우리에게 오늘 주님은 가장 소중한 준비로써 삶의 방향을 온전히 하느님께로 돌아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사실 주님의 구원을 알리는 표지로 소개하고 계시는 개념들은, 말하자면 ‘높고 낮음’, ‘굽고 곧음’, ‘거칠고 평탄함’은 그 환경 자체만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차별 가운데 상대적으로 겪게 되는 개개인의 존엄성이 무시될 때 우리는 깊이 상심하고 때로는 적개심마저도 갖게 되곤 합니다.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보다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무시당하고 배려 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주님의 자비를 나누지 못하는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몸소 그 길을 마련하라고 하시기에 저도 ‘말’이 아니라 주님처럼 몸소 그 길이 되어야 함을 성찰해보았습니다.
교회는 오늘을 인권주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높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지 않고 낮은 곳에 있어도 사랑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굽은 길이라 더 감사하다고 느끼고 곧은 길에서도 겸손할 수 있다면, 거치른 길도 평탄한 길도 평화로운 걸음들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대림절,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복음의 유일한 길, 날마다 사랑을 결심하며 몸소 생명의 길이 되신 주님을 따라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어느 누구든 사랑 받고 있음을, 존중받고 있음을,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도록 저도 스스로 사랑의 길이 되어 대림절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날이 무척 차가와 집니다만 그럴수록 성탄은 더욱 가까워지겠지요? 이번 한 주간은 우리를 앞서 가시며 스스로 사랑의 길이 되시는 주님을 닮아 가는 은혜로운 시간을 봉헌했으면... 합니다.
-이성구 요한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