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는 노자(路資) 성체
성 원선시오 드 폴의 생애에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하루는 성인의 수도회 사제들을 모아놓고서, 성인은 그들에게 물었다. "오늘 미사 성제를 바치셨습니까?" 모두들 "예"라고 대답했다. 성인은 계속해서, "그려면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야만인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기 위하여 여러분들의 나라와 가족과 친지들을 떠나서 외딴 나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비참하게 죽게 될 것입니다." 즉시, 거기 있던 모든 사제들은 예수님으로 가득 차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 위험한 선교에 자신들을 너그럽게 봉헌하였다.
성체를 모시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께서 힘을 주신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성체는 영웅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순교자들을 지탱하여 주었고, 임종에 처한 영혼들을 위로하여 주었다.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성 로베르또 벨라르민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오류에 대하여 이렇게 설교하였다. "우리의 육신을 위한 밀빵은 우리가 묵상만 하라고 애써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 천사들의 빵도 우리가 흠숭과 경배드리기 위해서만 봉헌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양육하고 강하게 하기 위하여 이 음식을 먹으러 가십시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서는 눈물의 골짜기에서 울고 있는 우리에게 이 사랑어린 부르심을 되풀이하고 계신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테오 11,28). 참으로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전쟁이다" (욥 7,1). 더군다나,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며"(2티모테오 3,12; 마테오 5,10),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그들의 정욕과 육욕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갈라티아 6,34),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 것들에 대하여 죽은 자처럼 살아야 한다" (콜로세 2,20).
예수님과 함께라면 "나는 나를 강하게 해주시는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필리피 4,13)라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 하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요한 1,3; 콜로새 1,17)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의 종 루이즈 엠 클라렛 드 라 뚜시 (Louise M. Claret de la Touche)와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궁핍을 제가 두려워하겠습니까? 세계를 떠받치고 계시는 분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 하느님의 성혈이 저의 혈관 속에서 돌고 있습니다. 오 나의 영혼이여, 아무런 두려움도 가지지 말라. 우주의 주인께서 너를 그분의 품안으로 데리고 가서 쉬게 해주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성 원선시오 드 폴은 그의 선교 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을 수가 있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모셨는데, 여러분께 무슨 희생이 불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성 원선시오 페레르는 박해의 피해자가 되어 2년 동안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그 모든 환난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으로 차있었다. 그 이유는 그를 묶고 있는 쇠사슬과 지하 감옥의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매일 미사 성제를 드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와 같은 용기와 기쁨이 성녀 쟌 다르크가 화형대로 향하기 전에 성체 성사의 예수님을 모실 수 있도록 허락되었을 때 그녀를 가득히 채웠다. 그녀가 갇혀있던 어두운 감옥 안으로 성체의 예수님께서 들어 오셨을 때, 성녀는 쇠사슬로 묶인 몸을 꿇고 예수님을 모셨으며 깊은 기도에 몰두하였다. 화형대로 가도록 명령받았을 때, 그녀는 일어나서 기도를 멈추지 않고 걷기 시작하였다. 화형대에 올라가서도 그녀의 영혼과 육신 안에 들어와 계시는 예수님과의 일치 속에서 불길에 싸여 숨을 거두었다.
순교자들을 강하게 하시는 성체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로부터 시작하여 천사적인 순교자, 성 타르치시우스, 그리고 현대의 순교자들에 이르기까지 순교자의 역사 전체는 마귀에 대항하여, 영혼들을 멸망시키려고 온 세상을 헤매며 돌아 다니는 모든 지옥의 권세들(1베드로 5,9)에 대항하여 싸우는 순교자들에 초인간적인 힘을 부여하는 성체 성사에 대한 증언이다.
근래의 일례를 든다면, 공산화된 중국에서 수녀들이 붙잡혀서 옥에 갇히고 기도하는 것조차 금지당하였다. 감시병들은 수녀들의 몸짓, 몸의 자세, 얼굴의 표정, 입술의 움직임까지 감시했으며 위반 시에는 혹독하게 벌하였다. 그 불쌍한 수녀들은 무엇보다도 성체를 갈망하였다. 그런데 한 신자 할머니가 주교님께 말씀드려 비밀리에 성체를 손수건에 싸서 모셔왔다. 이 책략은 성공하였다. 할머니는 감시병들이 보는 앞에서 수녀들에게 격노하는 사람인양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감시병이 안보는 순간에 작은 수건에 싼 것을 한 수녀에게 건네주고는 감옥을 나왔다. 그리고 감시병에게는 다시 와서 수녀들에게 또 모욕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끝으로 영성체가 병자들에게 주는 천상적 위로와 도움에 대하여 기억하자. 그들의 영혼 뿐 아니라, 육신에도 힘을 주며, 때로는 치유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성녀 리드비나,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 그리고 알렉산드리나 다 꼬스따에게는 성체의 외형이 그들의 몸 안에 머물러있는 동안 그들의 극심한 신체적 고통들이 기적적으로 멈추었다. 이러한 일은 브린디시의 성 로렌죠와 성 베드루 클라베르에게도 일어났는데, 그들이 미사 성제를 드리고 있는 동안 병으로 인한 그들의 심한 고통이 멈추었다.
"영혼을 먼저 돌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마지막 영성체 즉 이 세상 삶으로부터 다음 세상의 삶으로 옮겨가는 여행을 위한 음식인 노자 (路資) 성체이다. 오, 성인들이 노자 성체를 늦지 않게, 그리고 가장 좋은 의향으로 받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던가!
성 도미니끄 사비오가 중한 병으로 인하여 집으로 보내졌을 때, 의사는 잘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 거룩한 소년은 자기 아버지를 부르며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천상의 의사를 뵙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고해 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고 싶습니다."
성 안토니 클라렛 대주교의 건강이 악화되어 주위 사람들이 매우 걱정하게 되었으며, 두 명의 의사를 부르려고 하였다. 이를 알아채린 성인은 자기 병의 중함을 깨닫고 말했다. "여러분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먼저 돌보고 난 후에 육신을 돌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즉시 성사를 받기를 원했다. 그렇게 한 후에, 두 명의 의사를 부르도록 하였다. 그는 의사들에게 말하기를, "인제 당신들이 원하시는 것을 하시지요," 라고 하였다.
영혼이 먼저요, 그 다음이 육신이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못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나 너무나 자주 우리는 아픈 사람을 위해서 의사를 부르는 데 온갖 신경을 쓰면서 사제를 모시는 것은 최후의 순간에 가서야 하게 되니, 병자가 의식이 온전한 상태에서 성사들을 받을 수도 없고, 전혀 못 받게 되는 경우들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우리가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가! 만약 사제를 일찍 모시지 못하여 죽어가는 사람의 구령(救靈)이 위험하게 되고 그의 마지막 순간에 받을 수 있는 큰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 것인가!
성 요셉 까파쏘는 죽어가는 이들 특히 사형 선고 받은 이들을 도와주는 일에 전념하는 사제였다. 이 때문에 그는 병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까파쏘 신부님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 순간에 죽는다 하더라도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병자들에게 그들의 상태에 대하여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위험에 대하여 솔직하게, 현명함과 유화함을 가지고, 말해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모든 환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데까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도록 충고하였다. 성인은 말하기를, "이렇게 함으로써, 만약 그 병이 치명적인 것이라면 이미 희생이 봉헌된 것이며, 치유가 되면, 그 공로는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죽어가는 이에게 노자 성체를 모셔가는 일이라면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연로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노자 성체를 모시고 가는데 매우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어떤 이가 신부에게 젊은 신부를 대신 보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계단의 맨 꼭대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더 높은 계단이라도 올라갈 것입니다."
거룩한 노자 성체 : 얼마나 큰 은총인가!
성체는 이 어려운 유배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챤들에게 참 생명을 약속해주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의 육신이 그리스도의 몸과 일치될 때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 그 자체이신 분께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짦은 생명이 끝나려고 할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본다. 그분께서는 영성체로써 우리의 불멸의 영혼을 위한 진정하고도 영속되는 생명이 되어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죽을 육신을 위해서는 부활이 되어주시기 위하여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요한 6,55). "이 빵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리라" (요한 6,59), 왜냐 하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므로" (요한 11,25).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기록하였다. "신성한 성체에 대한 공경심 때문에 천사들은 간택된 이들의 땅에 묻힌 육신 주위를 에워싸서 호위한다."
거룩한 노자 성체 : 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가 임종 때에 한 사제가 노자 성체를 모시고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성녀는 침대로부터 혼자 일어나서 얼굴에 열정과 기쁨의 기색을 발하며 자신의 전부로써 성체를 향하였기 때문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성녀는 환희에 차서 외쳤다. "주님, 우리가 다시 만날 시간이 되었군요!"
성 제랄드 마옐라는 참으로 천사와 같은 신심을 가지고 노자 성체를 청하였고 모셨다. 성체가 모셔져 옴을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 성인은 감동하여 외쳤다. "여기 그분께서 저를 보러 오십니다. 나의 주님께서... 그분께서 저에게 얼마나 큰 자비로우심과 겸손으로 오고 계시는지를 보십시오!"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가 죽음에 가까웠을 때 노자 성체가 모셔져옴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를 들은 신부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 성체 성사의 예수님은 나의 음식, 나의 힘, 나의 생명이 되시고 내 마음이 열망하는 분이 되신 사랑 그 자체이시다. 내가 그분을 모실 때마다, 살아있을 때나 임종 때에나, 그분께서는 나를 그분의 것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그분은 나의 것이 되신다. 그렇다. 그분은 온통 나의 것이며 나는 온통 그분의 것이다 - 하나로 일치되어, 서로에게 속하게 된다 (요한 6,57 참조). 바로 이것이 지상과 천국에서의 영혼과 육신을 위한 사랑의 충만함이다.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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