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72) 진짜 사진가 / 김귀웅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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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정자 | 작성일2006-12-11 | 조회수74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12월 둘째주 대림 제2주일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루카 3,--6)
글쓴이; 제주도 신창성당 김귀웅 신부님
이곳 청정 제주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 찬란하고 투명한 날, 이렇게 좋은 날에 그냥 방 안에만 있을 수 없어 사진가방을 챙겼다.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이 함께 보이는 사계리 포구에 갔더니 예상대로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부족한 실력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멋진 풍경에 결국 사진기 렌즈를 접어두고 눈에 한가득 담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게 사진기를 들고 왔다갔다 하고 있으려니 한 아저씨가 부른다. 그분은 해안선을 따라 한참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저곳에 가면 진짜 사진가 양반이 있다. 그 사람에게 가서 어디서 어떻게 찍으면 좋을지 물어보아라." 하셨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을 찾아가보았다.
아름다운 형제섬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해안가 소나무 그늘 아래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서있고, 그 옆에는 플라스틱 의자와 간소한 가재도구가 녈려있었다.
봄 서너 달을 제외하곤 1년 중 8개월 정도를 그곳에서 생활하며 사진을 찍는다는 진짜 사진가를 만났다. 잠은 승용차 안에서 잔단다. 언제 어떤 날씨가 어떤 풍경을 연출할지 모르니 항상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상상도 못한 빛의 신비를 카메라에 담고자 그런 오랜 기다림을 희망으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 어떤 기다림도 없이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마구 셔터를 누르는 나 같은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사진가라고 해야 할까?
조그마한 폐교를 개조한 사진 갤러리가 있다. 그곳에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은 멋진 사진들이 한가득 걸려있다.
그 갤러리 주인은 뛰어노는 노루의 모습을 찍기 위해 한라산에 올라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며칠동안 기다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찍은 노루 일가족 사진은 그냥 한 순간을 담은 사진 한장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진 한장을 찍기 위해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기다림은 엄청난 수고와 인내 그 자체이다.
아기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이다. 그 사진가들을 떠올리며 내가 정말로 성탄을 기다리는 것인가 되돌아보게 된다.
탄생할 아기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산모는 아기용품 마련에서부터 숨쉬고 먹고 말하는 것까지 많은 준비를 한 후 아기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렇듯 진짜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준비',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예언자는 선포한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이 기다림의 시기에 난 무슨 수고와 무슨 인내로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가?
ㅡ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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