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2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이사40,1-11 마태18,12-14
“하느님!”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느님이요,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질책이나 충고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입니다.
감동적인 일화를 소개합니다.
‘레기날드(Reginald Garrigou-Lagrange OP) 신부는 토요일 마다
로마에 있는 안젤리쿰의 아울라 막냐(Aula Magna)에서 공개 강의를 했다.
어느 토요일 강의를 시작하는 신부의 첫 말씀은 “하느님”이란 단어였다.
그는 “하느님”하고는 침묵했다.
잠시 후에 그는 다시 강의를 시작했으나
또 한 번 “하느님”이라고 말한 후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팽팽한 침묵 속에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는 책을 덮어버리고는 일어나서 걸어 나갔다.’
이 강의에 참석했던 어느 분은
“이제까지 들었던 강의 중 가장 감명 깊은 신학 강의였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아마 레기닐드 신부님,
지금 여기에 계신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했음이 분명합니다.
하느님 체험보다 큰 감동과 기쁨,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위로와 격려로 큰 힘을 얻어야
우리 또한 이웃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매일 샘솟는 열정으로 삶의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사람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오늘 이사야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얼마나 우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말씀인지요.
그러나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게, 홀가분하게 하는 말씀인지요.
비록 풀 같은 존재이지만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희망을 거는 우리들,
역시 영원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풀 같은 미미한 우리 존재이지만
하느님은 하늘처럼 우리를 아끼시고 돌보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그 찾은 양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바로 이게 하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늘 아버지께는 우리 하나하나가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여 하느님께서는 하나하나 마다 수호천사를 배정해 주셨습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친히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은
당신 말씀과 성체성혈의 생명과 사랑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십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시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오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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