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어진 이름 '요한' - [오늘 하루도 ~ 홍성만 신부님] | |||
---|---|---|---|---|
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6-12-23 | 조회수637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12월 23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루카 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 * * * ~~~~~~~~~~~~
하느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하느님 앞에 의롭게 살아온 노부부인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그들에게 허락된 선물인 아기가 출생 여드레를 받고 이름을 짓습니다.
엘리사벳은 아기에게 당연히 명명(命名)되어야 할 가문의 이름인 즈카르야라는 명(名)을 거부합니다. 이에 사람들은 아기 아버지 즈카르야에게 손짓하여 아기의 이름을 묻자, 그는 작은 석판을 달라고 해서 그 위에다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씁니다. 바로 그 순간, 가브리엘 천사가 전하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르야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가족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은 '요한'이라는 이름이 주어지는 순간, 이에 대한 표징으로 주어진 벙어리로부터 해방은 나로 하여금 하느님의 '적극인 개입'에 대해 되새겨 보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 가문을 마감하고 새로운 가문을 연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구세주를 예언하는 구약의 시대가 끝나고 예언이 실현되는 신약의 시대가 도래(到來)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요한'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뜻이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시다'라는 의미가 그렇습니다.
이제 예언이 실현되는 신약의 시대, 새롭게 열리는 가문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지배하는 가문이 될 것입니다.
끝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한없는 은총을 내리시는 하느님을 외칩니다.
그가 외치는 내용이 곧 그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가 외치는 내용아 곧 그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가 외치는 것이 곧 그의 이름이고 그의 존재라는 것을 되새기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희망합니다.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은총은 베푸시는 하느님,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외치는 또 다른 요한 세례자가 되고 싶다는 것을……
-홍성만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