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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만과 겸손의 미묘한 차이
작성자이종삼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6 조회수927 추천수6 반대(0) 신고
 

교만과 겸손의 차이


교만


교만의 본질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것”이 교만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교만은 사람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이것이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전부 부인하며

오로지 자신의 주장만이 완전하다고 말합니다.

완전하신 하느님과 같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탄이 가르쳐준 거짓말이며, 원죄의 시작이기도 하며,

교만은 힘(폭력)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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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애들의 싸움을 보고

아빠 : 너 누나에게 잘못했다고 해라.

아들 : 전 잘못한거 없어요.

아빠 : 너 맞고 잘못했다 할 거야?

아들 : (화난 표정으로 침묵)

아빠 : 잘못한 부분을 가르쳐주지 .................

아들 : (그래도 눈에 힘주며 버티기 침묵)

아빠 : (큰소리치며 매질 할 듯이) 너 정말 잘못했다고 안할 거야?

아들 : (맞아도 인정 안할 듯이 눈에 힘주며 아빠를 쳐다봄)

아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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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얘가 내말을 이해 못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내가 가르치는 한계는 여기까지구나...

아들의 행동이 옳다.

그것은 이해 못하고 잘못을 시인한다는 것은 순명이 아니다.

단지 힘(폭력)에 의한 타협이구나.

애를 더 한 폭력으로 매질한다면 잘못했다고 하겠지만

이 애가 커서 또 다른 폭력(힘) 앞에서 진리를 포기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

부모가 키우는 것이구나.

교만은 폭력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부모가 교만을 가르치는 것이며

아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힘으로 다른 사람을 누르려 할 것이다.

이것이 교만을 키우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독을 주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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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간과 인내를 가지고 천천히 가르쳐줍니다.

시간이 지나 아들이 잘못을 인정합니다.

아~ 이제 이해를 하고 용서를 비는구나.

이것이 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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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스스로에게 유연성이 없으며. 완고하게 만듭니다.

교만은 자신만이 하느님이고 자신만이 옳습니다.

교만은 타인이 멍청한 바보일 뿐입니다.

교만은 폭력을 동반합니다.

교만은 타인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무관심합니다.

교만은 무관심 한척하며 뒤로 시기합니다.

교만은 자신을 고립시키기도 하고, 남을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교만은 사탄의 큰 무기입니다. 사탄은 교만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교만은 남을 죽입니다. 그리고 본인도 죽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가르치면 그 피해는 엄청납니다. 그는 사탄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분은 삼위일체의 하느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유연성을 가지고 참 진리를 깨닫는 연속의 과정일 뿐입니다.

성령하느님께 완고함에서 유연성으로 바꿀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들을 귀”를 청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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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언젠가 성당에서 원장 수녀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원장 수녀님 : 분과장님 참 일 잘합니다.

본  인 : 아닙니다. 분과위원들이 일을 다 했습니다.

수녀님 : 분과장님이 일을 잘합니다.

본  인 : 아닙니다. 전 한 일이 없습니다.

(한번 더 같은 질문, 그리고 같은 답변)


수녀님 : (정색하시며) 분과장님, 수도자가 잘한다면 잘하는 줄 알아야합니다.

본  인 : (띵...) 죄송합니다, 원장수녀님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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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때 겸손을 내가 잘못 배웠구나. 겸손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구나.

지나친 겸손은 겸손이 아니라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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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사람이 회의석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A : “죄송합니다만, 전 잘 모르지만 저의 견해는.........”

B : “잘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왜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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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 이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겸손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입니다.

자신에게 바탕을 둔 솔직함은 교만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진리에 바탕을 둔 솔직함은 겸손입니다.

오류 앞에 겸손한 것은 위선이고 아첨이며, 교활한 것입니다.

또한, 개인의 이익을 위한 잘못된 겸손의 포장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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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본인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견은 모두 오류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이때 우리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그 분이 말씀하는 부분에 대하여

분별력을 가지고 엄밀히 파악해 보아야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묵상하고 성령하느님께 여쭈어 보아야합니다. 

혹, 나의 부족함이라면 겸손히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리고 바로 고쳐가는 깨닫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상대방에게 물어봐야합니다.

상대방이 정확하다면 잘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러나 오류라면 그분께 정중히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물론 오류에 빠진 책이나 사이비 종교에 대하여

의견을 충분히 들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형제, 자매의 의견에 대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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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겸손과 성모님의 겸손이

진리에 바탕을 둔 솔직함에서 나왔음을 성서에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성부하느님께 잔을 거두어 주실 것을 청합니다. 그러나 겸손히 아버지의 뜻에 맡깁니다.

성모님 또한 창조의 진리에 어긋난 가브리엘 대천사의 말씀에 대하여 물어봅니다.

그리고 겸손히 순명합니다. 

성모님이 본인이 알고 있는 진리에 반한 천사의 말씀을 듣고

완고한 사고로 웃었다면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교만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먼저 본인이 알고 있는 진리에 반한 말씀에 대하여

질문하였고 깨닫게 되어 겸손히 순명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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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욱 부족한 저희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완고함으로

깨닫지 못하는 진리를 인내로써 서서히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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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식한 겸손이 아니라, 주님께 물어보는 겸손함에 맛들여야합니다.


겸손은 완고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입니다.

겸손은 지나친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은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입니다.

겸손은 진리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겸손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입니다.

겸손은 진리에 대한 물음입니다.

겸손은 진리를 나누는 것(가르쳐주는 나눔)입니다.

겸손은 오류, 사이비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형제, 자매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나누는 것입니다.

겸손은 모든 사람의 행실에 겸손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모상에 대하여 철저히 자신을 나추는 행위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살리고 남을 살립니다.

겸손은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하느님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겸손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입니다.

겸손은 사랑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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