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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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과 기쁨의 참 의미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7 조회수796 추천수11 반대(0) 신고

타고 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벼락의 자식’이라 불릴 정도였지만, ‘사랑의 사도’로도 일컫는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으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돌보아 드릴 것을 부탁 받았다.

파트모스섬에서는 <요한 묵시록>을, 에페소에서는<요한복음>과 <요한3서한>을 썼다고 한다.

 

부르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고 인간은 응답한다.

겟세마네 동산의 고통 중에 함께 있는 특전(예수 고통의 특권)을 누렸다.

가장 '솔직한 복음'으로 대단히 <참 인간>적인 면을 몇 가지 보여 주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이 마실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당신이 받을 고통의 세례를 그들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들(사도 요한도 포함)은 "예, 할 수 있습니다."하고 기꺼이 대답했다.

 

그의 복음은 대단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그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생활의 <여러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다.

사도 성 요한은 이전에 성 요한 세례자의 열심한 제자였다.

요한은 주님의 이와같은 각별한 애호에 감사하는 정에서 알뜰히 주님을 사랑하고 받들었다.

 

주님의 고통이 = 구속사업에 필요함을 알았고, [ 고통의 참 의미 ]

자신도 마음의 고통을 참음으로써 주님과 같이 희생으로 바쳤다.

 

주님께서는 그 보답으로 성스러운 성모의 장래를 그에게 맡기셨다.

교회의 장래 승리를 예언해 고통을 받는 신자들에게 위안과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요한은 "사랑은 그리스도교회의 기초요, 사랑이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었다.

 

구세주께서는 위격(位格)으로 하느님이심을 명백히 하였다.

말씀의 존재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육신을 볼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씀으로 볼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께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이 되시어

우리의 마음을 고쳐 주심으로 말씀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입니다."

 

충만한 기쁨은 = 바로 이 친교에, 이 사랑에, 이 일치에 있습니다. [ 기쁨의 참 의미 ]

 

요한은 그물과 배를 남겨둔 채,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의 진리(그리스도 사랑)를 증언한 탓으로 파트모스섬(감옥)에 갇혔습니다.

 

요한복음서의 주제는 "생명과 빛과 사랑이신 그리스도" 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 당신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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