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무런 죄도 없이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들, 감옥살이는 아니더라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금전적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은 그 억울함의 탓을 하느님께 돌린다. 하느님께서 그런 고통을 허락하셨다고 원망하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그 고통을 주신 것으로 간주하여 하느님을 미워하고 저주하기도 한다.
오늘 복음 말씀에도 참으로 억울한 이야기가 나온다. 헤로데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인 것이다.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구나!”(마태 2,18; 예레 31,15) 예수님이 없었더라면 무죄한 아기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 예수님 때문에 죽었으니 그 책임은 전적으로 예수님에게 있는 것 같다.
강에서 물놀이 중에 익사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물이 없었더라면 사고가 없었을 텐데, 물이 있어 사고가 났으니 물을 만드신 하느님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억울한 사람들의 고통은 하느님의 탓인 것 같다. 그러나 인간 고통은 자신의 잘못이 전혀 없는 고통이라도 그 원인이 악마나 다른 사람이나 자연 현상에 있는 것이지 하느님에게 있지 않다.
하느님은 욥이나 특별한 성인에게 특별한 목적으로 고통을 주시는 것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시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당하는 고통은 그 고통이 아무리 크고 억울하다 하더라도 하느님께 탓을 돌려서는 안 된다.
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 천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