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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80) 군자란이 꽃을 피웠어요!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8 조회수557 추천수7 반대(0) 신고

 

 

며칠 전 우연히 문갑 쪽을 바라보다가 군자란 화분에 시선이 머물렀지요.

그런데 잎새 가운데에 삐죽하니 희끄므레하게 뭔가가 보이는 거였어요.

아니, 지지리도 화초구실도 못하는 것이 이젠 잎까지 병이 들었나 싶어 순간 짜증스런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가운데를 헤쳐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꽃잎이었습니다.

흰색의 끝이 주황색으로 물든 꽃잎이 푸른 잎 사이에 비집고 들어 있었어요.

 

순간, 세상에 이렇게 신통할 수가! 싶은 생각에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겁니다.

조그만 화분을 사다놓은지 아마 6,7년은 된 것 같은데, 그동안 잎새가 별로 예쁘지 않아 늘 베란다 아니면, 구석에 내박쳐 있다가 화분들이 여러개 죽는 바람에 안방까지 오게 되었던 천덕구러기 군자란이 꽃을 피우다니....

잎사귀가 그럴듯하게 척척 늘어진  난(蘭)들은 오히려 꽃을 못피우는데, 그렇듯 괄세 받던 못난이 군자란이 꽃을 피울줄이야....

 

옛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못난 자식이 효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난 자식일수록 고생하며 가르쳐놓으면 잘 나가는 집, 잘 나가는 여자한테 장가들면 늙은 시부모하고는 레벨이 안맞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요.

오히려 코찔찔이 머리도 나쁘고 속이나 썩이고 많이 가르치지도 못한 못난 자식이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효도하며 산다는 말이 있죠.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더 아프게 느껴지는 손가락이 분명 있습니다.

아마도 속썩이던 자식이 정신 차렸을 때 느끼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그순간 <양육>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겁니다.

처음부터 그럴싸하게 보기좋은 화초를 사다 놓는 것보다는 이렇게 별것 아닌 것을 키우며 느끼는 재미와 기쁨에 대해서입니다.

 

처음부터 똑똑하고 잘나고 흠잡을 데 없는 자식을 키우며 느끼는 기쁨보다는, 못나고 속썩이는 자식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데에서 오는 희열이 더 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하느님도 아마 그러실 겁니다.

나처럼 신실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미사나 빼먹고 옆길로 새는 나같은 신자가 그래도 영 삐뚤어지지는 않고 마음 속에 하느님을 모시고 살다가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는 그런 시원찮은 자녀를 양육하시며 느끼실 보람과 기쁨에 대해서 말입니다.

 

못난이 군자란이 수년만에 꽃을 피우며 이렇게 또 저에게 묵상의 기회까지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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