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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충한 목자의 가장행렬 . . . . . [제찬규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5 조회수688 추천수7 반대(0) 신고

 

 

벌써 고백을 마쳤나요?

 

서품된 지 4개월 후,

부활 판공을 위해 공소들을 순방하던 때였다.

오랜만에 목자를 만난 기쁨에 시골 공소는 온통 축제와 같은

정겨운 접근이요, 만남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갓 신부가 된 터이고 보니,

천사같은 공소 신자들을 위해서라면 남김없이 헌신하고픈...

착한 목자상이 역력할 때였다.

 

그래도, 그들에게 고해성사를 얼마쯤 주다보면

피로가 엄습해와 깜박 졸 때가 있다.

그런 줄도 모르는 고백자는 낱낱히 죄 고백을 한 뒤,

사제의 짜릿한 훈계를 기다리지만...

사제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

 

"신부님, 죄 다 고했습니다."

 

어이없다는 듯이 고백자는 큰 소리로 독촉이다.

 

"벌써 죄 고백을 마쳤습니까?"

 

깜짝 놀라 눈을 뜬 나는 엉겁결에 딴전을 피우며 도리어 그를 꾸짖듯이

그를 몰아 세운다.

 

잠깐 공소의 고백소를 소개해 본다.

성사를 주는 사제를 최대한 편하게 모시기 위해

의자라는 문명의 기물이 없는 대신,

곡식을 되는 말(斗)을 거꾸로 엎어 놓고

엉덩이가 배기지 말라고 그 위에 방석을 덮어 씌운다.

 

다음에 천장 서까래에 발을 매달아 사제와 고백자를 분리시킨다.

그러나 [가설 고백소]에 발을 첬다고 해도 훤히 다 들여다 보인다.

이런 어수룩한 환경에서도

공소 교우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엔 아랑곳없다.

 

고백은 [하느님 찬미]라는 성 아우구스띠노 말씀의 깊은 뜻을 터득한

참회자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때,

나는 공소 교우들에게 얼마나 큰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 주었을까 하는

죄책감에 어서 그 공소를 빨리 뺑소니치고 싶기만 했다.

 

초임지 본당에서 보았던 두 할머니의 고백하는 모습을 곁들여 보자.

 

한 할머니는 고백의 기도 중 중간에 가슴을 치는 대목에서

하늘이 내려앉을 듯한 한숨을 몰아쉬면서 팔에 잔뜩 힘을 주어

주먹으로 가슴이 터져라 쥐어 박는다.

 

가슴의 통증이 클수록 위안과 평화를 느끼는 이 소박한 회심,

가식이나 건성이 아닌,

진정 하느님과 함께 살려는 마음 씀씀이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한 분의 할머니는,

성찰한 죄를 고백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사제가 정지 시킬 때까지 줄줄이 죄가 쏟아져 나온다.

 

할머니는 영세하지 않은 작은 아들의 죄까지 사해 달라고 안달이다.

주책없는 할머니라 핀잔하기 앞서 아들의 영육을 염려하는 모성이

하늘만큼 넓다고 생각되었다.

 

이제...

나 자신의 사목 가장행렬을 이야기해 보자.

 

내가 어릴 적에 바치던 기도는 천편일률적인 양식이어서 진저리가 났다.

그러나,

하느님께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뿐 아니라,

마지못해 찡그리며 하는 기도도 마다하시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사제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찡그린 기도나마 끈질기게 한 덕분이라 믿는다.

 

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이 원하는 대로

[기도하는 사제]가 못되었다.

 

아직도 찡그린 기도의 달갑지 않은 유산이 몸에 배어서

좀처럼...

다소곳이 성당에서 생의 흐뭇함을 새김질하는 기도를 못하는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가상한 것은

교우들이 보라는 듯이 성당에서 억지로 오래도록 기도에 열중한다.

 

이런 가장행렬이라도 해야겠다는 것이...

창피한 나의 영성생활의 신조처럼 되어 버렸다.

 

남들이

바리사이인 같은 놈이라고 비방을 해도...

이런 기도마저 아니할 때...

내게서 기도하는 꼴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또하나의 불충이 있다.

 

나는 어릴 적 가난하게 살았고,

학창시절에도 잇단 어지러운 시국 덕택에 굶주림의 서러움을 경험했다.

퍽 다행스럽고 값진 체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에 나는 다른 본당으로 전근을 갔다.

전임자에 비해 학식도 덕도 모자랐기 때문에

그 본당을 꾸려 나간다는 것이 아득하기만 했다.

 

나는 결심을 했다.

평소 실력을 발휘하겠다고 말이다.

그 비장의 무기는 빈민가 방문이다.

 

찾기 쉬운 부락을 인기전술로 누비고 다녔다.

이처럼 회칠한 무덤같은 위선자의 가장행렬에 칭찬이 자자했다.

내심 부끄러움을 참을 길이 없다.

 

역설적이기는 해도

앉은뱅이 용 쓰듯, 입만 장사인 것보다 오히려 가장행렬 같을지라도...

스스럼없이 가난을 나누며 많은 기도 시간을 가질 때

생의 기쁨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이 불충한 목자는 오늘을 살아간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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