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월 5일 야곱의 우물- 요한 1, 43-51 묵상/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5 조회수704 추천수2 반대(0) 신고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43-­51)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참으로 다양하다. 예지인(Homo sapiens), 공작인(Homo faber), 노동하는 인간(Homo exercens), 놀이의 인간(Homo ludens), 전례의 인간(Homo liturgicus) 등.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무엇하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구체적으로 우리가 한 인간의 됨됨이나 인격, 그 삶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며, 때로는 아주 단편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타인이 평가하는 나 또한 다르다.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내 전 실존이 아니라 극히 일부분에 해당된다.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이 예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말씀하신다(48절). 그렇다. 나를 참으로 잘 알고 계신 분은 주님뿐이시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시편 139,1­-2).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인간이 누구인지를 참으로 알려면 먼저 하느님을 알아야 한다”고 갈파했다.

 

인간의 성숙, 인격의 완성 역시 마찬가지다. 성경이 계시하는 하느님과 인간관계는 계약으로써,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인간의 신뢰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래서 현재 미완성의 존재로서 되어가고 있는 인간의 참모습, 진정한 ‘나’는 사실은 하느님의 언약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3).

구요비 신부(가톨릭대학교)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