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재미있는 모성의 작용을 느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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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요하 | 작성일2007-01-06 | 조회수589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재미있는 모성의 작용을 느꼈습니다 10년째 매주 해미성지의 물을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일주일에 한 번씩 해미성지의 물을 내 12인승 승합차 가득 길어다가 여러 집에 나누어 드리는 일을 10년째 계속하고 있다. 1996년 가을부터 시작한 일이니 올해로 만 10년이 넘었다(그전에는, 즉 1992년부터는 해미와 덕산 사이 한티고개 옆 '태암석산'에서 물을 길었다). 전에 몇 년 동안은 일요일 새벽에 아내와 함께 그 일을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주로 수요일 오후에 나 혼자 그 일을 한다. 방학 같은 때는 아내나 아이들이 도와주기도 하지만(또 아주 가끔은 노모께서 도와주시기도 하지만), 대개는 나 혼자 그 일을 한다. 굳이 수요일에 그 일을 하는 것은, 여러 집에 물을 가져다 드리다 보니 물통을 거두는 일도 수월찮은 일이어서 그 모든 집들로 하여금 '물 수(水)자 수요일은 물통 내놓는 날'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도합 아홉 집에 물을 나누어 드리고 있는데, 10년 세월을 내처 변함없이 물을 받는 집은 한 집뿐이고, 대개는 중간에 바뀐 집들이다. 이사 가거나, 너무 미안해하거나, 물통도 잘 닦지 않고 제때에 잘 내놓지도 않는 둥 귀한 물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연유 등으로 중단을 하게 된 집들도 있다. 아무튼 그런 집들까지 다 합하면 내 작은 수고로 해미성지 물을 맛보고 산 집들은 서른 집도 넘을 것이다. 해미성지 물은 내가 '사수(四水)'라고 명명하여 천주교 관련 잡지들에 글을 써서 자세히 소개한 물이기도 하다. 사수란 네 가지 성격을 가진 물이라는 뜻이다. 우선 살아 있는 물이니 생수(生水)요, 성지에서 나오는 물이니 성수(聖水)다. 나머지 두 가지는 약수(藥水)와 육수(肉水)다. 해미성지는 전국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례를 오는 곳이기에 서산시청에서 해마다 네 번씩 수질 검사를 한다. 그때마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인 데다가 '약약수(弱藥水)'라는 판정이 나온다. 강약수(强藥水)라면 문제가 있지만 약약수이니 일상적인 음용수로는 최상의 물이라고 한다. 해미성지의 물이 약수인 이유는? 그런데 심산유곡도 아닌 곳에서 나는 물이 어째서 약수일까? 해답은 자명하다. 해미성지는 옛날 흥선대원군 시절 수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산 채로 매장을 당한 곳이다. 천주교의 세계 각처 수많은 순교 성지들 중에서 유일한 '생매장순교성지'가 바로 해미성지다. 그러니까 옛날 생매장을 당한 순교자들의 몸에서 육수가 흘러서 약수가 되었다는 얘기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재미있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엄숙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수, 성수, 약수, 육수 등 네 가지 성격을 지닌 귀한 '사수'를 70리 거리인 해미까지 가서 길어다가 나 혼자 마신다면 그건 죄를 짓는 일이다. 이왕 거기까지 가서 애써 길어오는 물이니 최대한 많이 길어다가 여러 집과 나누는 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씩 여러 집을 다니며 물통을 거두고, 골목골목에 다니며 무거운 물통을 배달하는 일이 힘들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하면서 하느님의 '점수'를 생각한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하느님의 점수를 많이 생각하며 산다. 그런 하찮은 일에도 하느님께서 조금은 점수를 쳐주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신앙인에게는 사후 세계가 목표이지만, 천국에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믿음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천국에 가는 일이 그렇게 쉽다면 굳이 참혹한 고통 속에서 순교까지 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미성지에 갈 적마다 되새기곤 한다. 내가 매주 해미성지 물을 길어다가 여러 집에 나누어드리는 것도, 또 우리 가족만을 위한 승용차가 아닌 좀 더 다양한 용도의 승합차를 고수하는 것도 다 하느님 신앙으로 말미암은 일이다. 이웃 새댁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모성 지난해 1월 충남 태안군 태안읍 남문리 진흥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 내가 해미성지 물을 가져다 드리는 집이 두 집이나 더 늘었다. 같은 동 같은 8층의 바로 옆집과 위층 집이다. 재미있는 것은 두 집 모두 안 사람들이 새댁이라는 사실이다. 위층 새댁에게는 젖먹이가 있고, 옆집 새댁에게는 몸속에 곧 태어날 아기가 있다. 나는 태암석산 물이나 해미성지 물을 이웃과 처음 나눌 때부터 아기가 있는 집을 선택하여 권유를 했다. 엄마가 좋은 물을 마셔야 좋은 젖이 나올 테고, 우유를 먹일 경우에는 더더욱 좋은 물에 우유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아기를 가진 엄마들은 즉시 내 호의를 받아들였고, 그 물을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겼다. 오히려 내 쪽에서 더 고마울 지경이었다. 진흥아파트로 이사 온 후 내가 수요일마다 길어오는 물에 관심을 표하는 몇 분 중년 주부들에게 해미성지 물을 간단히 소개한 다음 매주 한 통씩 길어다 드릴 테니 한번 잡수어보겠느냐고 물었다. 대개는 사양을 했다. 어떤 부담을 의식하는 탓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 바로 옆집과 위층 새댁들은 즉시로 내 권유를 받아들였다. 아이를 가졌으니 좋은 물을 마셔야 한다는 말에, 좋은 물에 우유를 타서 아이에게 먹어야 한다는 말에 새댁들은 사양 한번 하지 않고 냉큼 내 호의를 받아들였다. 나는 새댁들의 그런 태도에서 모성의 작용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무엇보다 우선인 것을 거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 해미성지 물을 길어와서 여러 집을 돈 다음 마지막으로 내가 사는 아파트의 옆집과 위층 집 문 앞에 물통을 놓아줄 때는 더욱 즐거워지는 기분이다. 내 호의를 사양하지 않고 냉큼 받아들인 두 새댁의 태도에서 느꼈던 '모성'의 작용을 상기하며 슬며시 미소를 짓곤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신년호(2007년 1월 4일치)에 게재되었습니다. 2007-01-05 13:40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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