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시절, 방학을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오면 동창생들이 함께 모여 방학생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한 번은 시골 본당 출신 친구가 겨울방학 동안에 마귀 들린 여자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본당에 마귀 들린 여자가 있어서 많은 교우들이 기도해 주려고 갔는데 이 여인이 메가톤급 신자들의 비리를 폭로해 모두를 혼비백산시키고 본당은 초상집과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마침 그 시기에 동창생이 방학을 지내러 내려가니 신자들은 크게 반기며 “우리 학사님이야 순결한 분이시니 마귀 들린 여자를 대적할 수 있겠지!” 하더란다. 다음날 신자들과 함께 그 여인의 집을 방문했다. 신자들이 여인에게 신학생이라고 소개한 후 함께 기도하는데, 기도하는 동안 내내 이 마귀 들린 여인이 뚫어지게 자신의 눈을 쳐다보며 무슨 비리를 찾는 것 같아 두려운 나머지 시선을 피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한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어쩌면 그 여인이 마귀에 사로잡힌 부마자였다기보다는 인간적인 상처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던 가련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세상 안에는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는 하느님의 빛과 은총이 역사하시는 반면에 이에 저항하는 어둠과 악의 세력이 공존하고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을 고쳐주신다.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갔다”(26절). 예수님 가르침의 권위는(22절), 그분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심을 단지 말로만 선포하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시도록, 곧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악의 세력과 싸우기까지 하심에서 나온다. 예수님은 단지 인간의 신체적 병만을 치료해 주시지 않고 인간의 근원적 병인 죄까지 그리고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사로잡고 있는 악령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도록 우리를 초대해 주시는 구마자이시다.
구요비 신부(가톨릭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