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여름은 천국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온통 숲은 초록으로 빛나며 불어오는 바람도 초록바람이다. 호수가 300만 개가 넘는다 하니 물 또한 싱싱하고 어느 곳에서나 물소리가 정겹다. 지난 여름,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배가 등가죽에 붙은 개 두 마리를 만났다. 나를 보고 흠칫 놀라면서도 애처롭게 쳐다보며 꼬리를 감춘다. 목줄이 끊어진 것으로 보아 도망쳐 나온 것 같았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애원하는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 멀리 있는 수녀원까지 되돌아와서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개들은 맛있게 먹고 보답이라도 하듯 한 시간 내내 뒤를 따라오며 한적한 숲길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다. 외진 숲길은 무스라는 큰 짐승과 곰이 나올 수 있어 조마조마한데 녀석들 덕분에 마음놓고 걸을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개들과 헤어지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부디 좋은 주인 만나 행복하기를….’
돌아오는 길에 개들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았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신을 비우고 겸허하게 낮출 때 구원이 온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떠돌이 신세로 가난한 동네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분은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자, 병자와 죄인들 사이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붙잡혀 매질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분의 십자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의 상징이 되었고 내 구원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저주했던 그 십자가가 인간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었고, 매일의 삶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 저 나병환자처럼 겸손되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 내가 먼저 고개 숙여야 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편 손을 잡아야 한다. 내가 양보하여 한걸음 물러섰을 때 그리고 내가 한 계단 내려섰을 때 화해와 용서와 사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모두들 위로 올라가기 바쁜 세상이다. 매일매일 바벨탑을 쌓기에 여념이 없는 이 시대에 나병환자는 자신의 구원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먼저 겸손되이 무릎을 꿇는 것부터 배우라고 가르친다.
문화순 수녀(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