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의 삶을 사는 베네딕도회 수도승들,
그대로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을 연상케 합니다.
얼마 전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 기행(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이란 글의
머리 부분이 생각납니다.
“산은 천연의 사원(寺院)이요,
나무는 그 속에서 묵언 정진하는 수도승이다.
나무는 사람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온갖 칭찬을 늘어놓아도 으스대지 않는다.
말 한마디 안하면서 모든 말을 한다.
사람은 그 많은 말을 하면서도, 늘 말이 안 통한다고 투덜거린다.
나무야, 나무야... 천년을 하루 같이, 나무야.”
비바람, 뙤약볕, 엄동설한 추위 등 산전수전 다 겪으며
거목들로 커가는 정주의 나무들,
그대로 공동체 삶 중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하느님께 깊이 뿌리 내려가며 성장 성숙해가는 수도승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바로 히브리서에서 묘사되는 주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나무들처럼
온갖 고난을 겪으며 순종을 배움으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고난을 통한 순종의 여정이요,
순종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갑니다.
온갖 크고 작은 고난을 겪어가며
순종을 배워가는 삶 중에 체득되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지혜가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아무 때나 단식이 아니라 단식의 때를 분별하는 지혜요,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 지혜요,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지혜입니다.
평범해 보이나 이 모두들 체험적 삶의 지혜입니다.
옛 사막 수도자들을 찾았던 구도자들 역시
지식을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 지혜의 말씀을 들으러 갔습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좋은 믿음과 지혜를 주시어,
온갖 어려움 중에도 순종을 배우는 삶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