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 복음묵상] 뿌려진 복음의 씨앗 ㅣ박상대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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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7-01-24 | 조회수846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07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기념일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Hear this! A sower went out to sow.
하느님의 말씀은 씨앗으로 우리 마음에 뿌려진다. 길바닥과 돌밭 그리고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속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자라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도 좋은 땅에 떨어져야만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뿌려진 복음의 씨앗 마르코복음 4장에는 네 가지의 비유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3-9절). ’등불의 비유’(21-25절). ’자라나는 씨의 비유’(26-29절), 그리고 ’겨자씨의 비유’(30-32절)이다.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우선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신 장소(1-2절), 비유 자체의 내용(3-9절),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10-12절), 그리고 비유의 설명(13-20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 비유도 그렇지만 다른 세 가지의 비유들도 그 핵심적인 주제는 모두 ’하느님나라의 신비(神秘)’에 관한 것이다. 복음 전체의 내용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나 몇 가지 요점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장소가 가파르나움의 집에서 갈릴래아 호숫가로 옮겨갔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지금까지 예수께서는 회당이나 집에서 가르치셨다. 그럴 때마다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고 더러는 밖에서 말씀을 들어야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예수께 더 큰 장소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모여든 군중은 호숫가에 서있고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가 앉으셨다는 설명은 분명히 예수께서 ’가르치는 선생’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자리에 앉아서 가르침을 내리던 유대교 율법교사, 즉 랍비(rabbi)들처럼 예수께서도 이제는 당대의 군중에게 비유의 모양으로 가르침을 내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생’으로 자리를 굳혀 가시는 것이다. 다음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알아보자.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설교의 주제는 거의 모두가 하느님나라의 신비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신비(神秘, mysterium)란 인간의 이성적 이론(理論)과 인식(認識)을 초월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영묘한 비밀을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신비는 인간의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말과 지식으로도 하느님나라를 깨우칠 수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밝히는데 비유를 사용하시려는 것이다. 물론 비유(比喩)도 인간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비유로 표현되는 본래의 뜻을 꿰뚫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비유는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그 지혜는 ’알아들을 귀’(9절)를 말한다. 예수께서는 알아들을 귀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구별하여 귀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따로 모아(10절)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 이는 마치 정규수업을 마치고 12제자들과 특별히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따로 모아 과외수업을 행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아마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른다. 씨는 잘 갈아엎은 밭에 뿌려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스라엘의 척박한 땅을 생각한다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이는 복음이 선포되는 환경을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조건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느님나라에 관한 복음의 말씀이 항상 좋은 조건에 뿌려진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이 비유는 이미 예수님의 부활 이후 초대교회의 복음 선포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람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늘 사탄의 간악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온갖 환난과 박해, 세상걱정과 재물의 유혹이나 그 밖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곳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기대치의 열매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조건, 즉 알아들을 귀가 있는 마음에 뿌려진 씨앗은 그 씨앗이 담고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백 배 이상의 열매를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의 낟알이 뿌려져 100개의 낟을 열매 맺는 다는 것은 분명히 과장된 표현이다. 그만큼 과장되었기에 하나의 복음의 씨앗이 가져오는 효과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복음의 씨앗은 다름 아닌 하느님나라에 관한 복음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씨앗의 주체는 이 씨앗이 열매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지는 하느님나라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능력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니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 박상대 신부 ▒
♬ 주님 나의 길에서 - 가톨릭국악실내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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