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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98) 내가 그녀에게 진 빚은 / 하청호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5 조회수706 추천수6 반대(0) 신고

 

 

 

                                     글쓴이 : 천안 신방동 성당 : 하청호 보좌신부님

 

 

내 생애 가장 부담스러운 용돈은 막달레나 할머니의 껌 판 돈 5만 원이었다.

7년 전 군종병인 내게 매달 군종후원회 미사에 오셨던 막달레나 할머니는 가끔씩 5만 원이 든 노란 봉투를 쥐어주시곤 하였다.

 

"학사님, 뭣 좀 사 드소!"

 

받지 못하겠다며 도망이라도 하는 날이면 내 책상 서랍 속에 그 노란 봉투를 넣어두고 가셨다. 한숨을 쉬며 어렵게 받아든 돈은 휴가를 나가면 번번이 술값으로 써버리는 너무 쉬운 돈이 되어버렸다.

 

군부대 앞 동양나이트 앞에서 매일 껌을 팔아 생계를 꾸리시는 막달레나 할머니는 어렵게 모은 돈의 절반가량 되는 몇 십만 원을 매월 교무금으로 내셨다.

 

할머니는 후원회 미사에 오실 때마다 누더기 옷을 걸치고 다음끼 기약이 없는 사람처럼 콩나물국, 우거짓국에 밥 두 그릇 빡빡하게 말아 드셨지만 내게는 누구보다 부자로 보였다.

 

언젠가 한 자매님과 함께 20Kg 쌀 한 포대, 김치 한 통을 들고 찾아간 할머니 집은 한 몸 누이고, 기도 상 놓고 보니 말 그대로 우리가 앉을 수도 없는 한 평짜리 누옥이었다.

 

그 뒤로 몇 번이나 할머니의 껌 판 돈 5만 원을 술값으로 받아먹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껏 그 술은 소화불량에 걸려있다.

 

지난달 큰맘 먹고 시간을 냈다.

쌀 살 돈과 흰 봉투 하나를 준비해가지고 할머니를 찾아 이곳저곳 수소문을 했지만, 이미 7년이 지난지라 할머니를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서너 곳을 헤맨 끝에 알아낸 할머니의 행방은'''''  .  웬걸!

작년에 돌아가시고 이 땅에 안 계시단다.

좀 더 일찍 찾아뵐 것을''''' .

빚 갚아야 할 대상이 이제는 없다는데, 그 빚은 한없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옆 동네 버려진 굿당에 아주머니 한 분이 사셨다.

한겨울에도 찬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데다 알고 보니 젊은 날 말 못할 고통을 겪어 정신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 대책 없는 모습을 딱하게 여긴 어머니는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은 그 아주머니를 대녀로 접수(?)하고 성당에 데리고 다니셨다.

정신이 불안정하지만, 새로 얻어준 조그만 방을 쉴 새 없이 쓸고 닦고, 닳아 떨어지도록 빨래를 해 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성당에 가자!"  하면 처음엔 주저주저 하다가 이내 립스틱 짙게 바르고 따라나서신다.

국물 흐를세라 조심스레 김치통 들고 쌀자루 낑낑 어깨에 메고 담벼락 좁은 골목길 아주머니 집을 찾아 올라갈 때면 우연이지만 아주머니 세례명이 막달레나인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듣고도 그저 구경꾼으로만 머물러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제 주인공으로서 초대하신 것이다.

또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듣는 우리를 주인공으로 초대하신다.

 

그러나 참으로 내가 그리스도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어머니의 작은 자선을 보고 흡족해하고 그 기도 덕에 내가 신부로 산다며 위안 삼았을 뿐, 정작 한 줌의 쌀이 되어 배고픈 이에게 가주지 못했던 나는 위선의 굴레를 쓰고 사는 소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우리를 대신하여 온갖 사랑을 해주시는 그리스도를 굳게 믿으면서 실상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나의 이중적인 모습, 겉보기로는 신앙인인데 속에는 나눔도 희생도 없는 껍데기뿐인 신앙인은 아니었던가!

나의 막달레나 할머니는 어디에 계시는가?

 

매 미사 때마다 봉독하고 매 전례 때마다 기념하는 모든 말씀과 신비는 지금 나의 삶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불행한 소외자들은 너무 많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느님의 은총은 내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로,

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특성이 있다.

 

막달레나 할머니가 나에게 준 빚은 이제 빛이 되어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원제 : 껌 판 돈 5만 원>

 

 

                          ㅡ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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