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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버지와 아들 . . . . . . [류해욱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5 조회수803 추천수15 반대(0) 신고

 

 

 

 

 

 

아버지와 아들


오늘 박동규 교수가 1999년에 썼던

[가난은 아버지 가슴에 별과 시를 주었다]

라는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글의 일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아들을 낳아 조금 넓은 방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집에 들르니까 아버지가

'방을 넓혀야 할 텐데 ' 하고 걱정을 하셨다.

 

내가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가 저녁에 번역할 거리를 준다고 했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안색이 나빠지면서

'그런 일 하지 마라.' 하고 말렸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아버지가 중학교 이 학년 겨울, 자취방의 방세를 내지 못하자

집주인이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고향에 내려가 기차 통학을 하겠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담임선생님이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학교 온실에서 지내라고 하셨던 것이다.

 

아버지가 온실에 가마때기를 깔고 누워 보니

유리창 위로 별들이 보이고

그 별들은 가슴에 와서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 말씀 끝에

'이놈아, 내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별을 보며 내 신세가 가련하구나…!

 했으면 지붕이 있는 집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겠지.

 그러나 나는 별들이 속삭이고 가는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했으니

 시인이  되었지.'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시인이 된 것은

온실 가마니 위에 누워 지붕이 없음을 한탄하기보다는

아름다운 별을 볼 수 있었기에 시인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갈 길을 찾았다.


이제 아버지가 가신지도 이십 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들인 나는 아직도 살아 계신 아버지,

내 곁에서 나를 지켜 주시는 아버지만 생각하기에

내 기억의 회상도 그쪽으로만 흘러갔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1999 5)

[나그네]라는 시로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시인 박목월 선생과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수필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박동규 교수는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학생 시절 시험을 보기 위해서도 딸딸 외워야 했던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6-1978).

향토적 서정을 간결하고 선명하게 노래한 그는

그의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해 박동규 교수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에세이집

[아버지와 아들]을 냈습니다.

그가 위의 글에서처럼 자주 아버지 박목월 시인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긴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박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아버지의 실상을 진단하지 못하고 나도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식 사랑과 부모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부모 사랑의 원형을

  아버지 사이에서 밝혀보려고 했다”

고 썼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일기와 산문 등이 함께 실린 [아버지와 아들]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 뿐 아니라 한 가족이 세대를 뛰어넘어

어떻게 소통하고 살았는지가 잘 나타나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가 그리고 있는 아버지 박목월 선생은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입니다.

식사를 하려고 가족이 모이면

큰아들인 자기부터 시작해서 막내까지 자식들 머리를 다 쓰다듬고 나서야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박동규 교수는

“표를 살 돈이 없는 아버지는 중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서커스 천막 주변을 맴돌다가 개구멍을 발견하면

  얼른 아들을 들여보낸 뒤 행여 경비에게 들켰을 것을 염려해

  그 앞에 내내 지키고 서 있었다.” 고 회고합니다.

 

가난한 시인이었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마음대로 책을 사주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해 어린이날 보자기에 싼 만화책을 한보따리 건네주시며

“책이라는 것은 마음의 양식을 키우는 것이고

  만화책은 상상의 날개를 달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지.”라고 하셨고

지금도 그는 이 어린이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인정도 많았고 품도 넉넉했답니다.

어느 날은 집에 도둑이 들었답니다. 

집을 털려던 도둑을 붙잡았는데 아버지는 그 도둑을 앉혀 두고

네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눈 뒤에 돈을 손에 쥐어 주며 돌려보냈답니다.

사정을 들어 보니 그 도둑은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먹을 것을 구하러 들어왔었다고 합니다.


박목월 시인은 시에서 느끼는 것처럼 정갈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산문은 만년필로 썼지만 시는 꼭 연필을 깎아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연필을 깎으며 마음을 가다듬게 되지.

  어떻게 마음가짐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길이 열리는 거야.

라는 말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유리창을 통해 하늘이 보이는 온실에서 별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가련하게 생각하지 않고

별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고 시를 쓰려고 생각했던

시인 박목월 선생의 어린 시절의 일화를 들으며

저는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상황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경탄하게 됩니다.

 

감옥의 창살을 통해서도 캄캄한 어둔 밤만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어둔 밤을 밝히는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이 오히려 아버지의 가슴에 별과 시를 주었다고 말하는

아들 박동규 교수는

그 아버지를 통해 자기의 갈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많은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높은 지붕이 있는 집만을 마련해 주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십 년이 지나도 별과 시로 가슴에 남아 있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자식들에게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갈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더 현명하고 지혜롭지 않을까요?

 

 

 

 

- 예수회 [말씀의 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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