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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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8 조회수773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7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 다해

 

 

And he said, “Amen, I say to you,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Indeed, I tell you,
...

When the people in the synagogue heard this,
they were all filled with fury.
(Lk.4,24.28)
 

 

제1독서 예레미야서 1,4-5.17-19

제2독서 코린토 1서 12,31─13,13
복음 루카 4,21-30

 

어느 교도소에 교화를 담당하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많은 죄수들을 선교하는 데 일생을 비치셨죠. 그런데 이 신부님은 죄수들을 매일 찾아가면서도 매일 처음 본 사람처럼 반갑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늘 그 사람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죄수 중 한 명이 물었습니다.

“아니 맨 날 얼굴 보면서 왜 인사는 또 하고, 또 하는 거요? 짜증나게....”

그러자 그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어제 내가 본 당신은 어제의 당신이고, 오늘 본 당신은 완전히 새로운 오늘의 당신입니다. 하루하루 변화하는 당신이 반가워서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인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는 신부님이기에 매순간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 모습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예수님도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거든요. 그래서 당시의 부정적이라고 지칭되었던 사람들인 병자, 세리, 창녀 들을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과 직접 대화하셨고, 그들의 손을 직접 잡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은 이러한 모습을 따르지 않습니다.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소외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나와 상관있는 사람,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푸는 마치 2,000년 전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폐쇄적인 모습이 가득한 곳에서는 예수님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을 한 번 기억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지요. 자신들과 똑같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예수님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모습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고 복음서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직접 사람들 한가운데로 오셨지만,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그 가운데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으셨던 것이지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는 복음말씀. 이 말씀이 지금 우리들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즉, 주님께서 계실 자리를 우리가 없앰으로써 주님을 쫓아내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땅에는 아직도 소외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니 우리 본당 공동체 안에서도 얼마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들을 위한 조그마한 관심, 작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몰아내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쫓아내면 정말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곁으로 떠나십니다.

주님께서 한가운데를 걸어 나가시는 그런 곳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이 시대에 소외받는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기도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생활합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합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5가지 사랑의 언어' 중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당신 배우자로 하여금 하게 하기 위해
겉치레 말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칭찬을 들을 때 그 말에 보답하고 싶어서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한다.

말로 칭찬하는 것은 당신이 배우자를 인정한다는
하나의 좋은 표현이다.
‘격려하다’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다’는 의미이다.

우리 모두는 불안정하게 느끼는 어떤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가 없으면 일을 성취하지 못한다.
당신 배우자의 내면에 있는 잠재력은 당신의 격려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They rose up, drove him out of the town,
and led him to the brow of the hill
on which their town had been built,
to hurl him down headlong.
But Jesus passed through the midst of them and went away.
(Lk.4.29-30)

 

 
 
빠다킹 신부님^^
 
1월 28일 오늘 사제 서품 8주년...
 
축하드려요~~~
 
주님의 거룩한 사제, 훌륭한 목자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No one like you - Anne V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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