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방을 잃은 사람의 미안한 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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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요하 | 작성일2007-01-30 | 조회수60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이제는 택시에다 가방도 놓고 내리다니… 가방을 잃은 사람의 미안한 마음 <1> 지난 26일(금) 오후 모처럼 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어떤 신앙친목공동체의 올해 첫 모임이 있어서였다. 지방에서 사는 핸디캡 때문에 서울의 저녁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천안에서 고등학교에 다닌 딸아이의 원룸 덕을 많이 보았다. 모임을 끝내고 (2차에는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열차를 타고 천안으로 내려오면 하룻밤을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지난해부터는 서울의 저녁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처음 몇 번은 천안역 근처나 고속철도 천안아산역 주차장에다 차를 놓고 서울로 가서 모임에 참석하는 방법을 취했다. 모임 후에 천안으로 내려와서 내 차를 가지고 집에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자니 비용도 많이 들고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 금전 손실, 시간 손해, 몸고생 등 세 가지를 합하면 일찍이 서울에 거처를 장만하지 못한 내 신세가 한없이 처량해지고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그래서 지난해는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송년 모임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 1월 모임에도 참석을 했다. 송년 모임, 신년 모임이라는 명칭에 담긴 뜻을 외면할 수 없는 탓이었다. 지난해 12월 송년 모임에는 아내와 함께 갔는데, 강남터미널에서 저녁 8시 10분에 뜨는 충남 태안행 마지막 버스표를 예매한 탓에 모임 후 돌아오는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신년 모임에는 혼자 가게 되었는데, 아예 처음부터 서울에서 일박을 하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날씨가 불안하여 차를 가지고 갈 수도 없고, 모임 시간과 장소를 놓고 볼 때 저녁 8시 10분 마지막 버스를 타고 오기는 불가능하겠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서울에서 일박을 하기로 마음먹으니, 모처럼 만에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마음 놓고 술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과거에는 두주불사하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통풍과 당뇨 등 성인병 관리를 하며 사는 신세가 되어 거의 술을 마시지 않고, 이런저런 모임 자리에 가서도 한 잔이나 두 잔으로 끝내니, 사실은 늘 갈증을 참고 사는 셈이었다. 이번에는 모처럼 만에 서울에서 제대로 술 한잔하고 일박을 하고 오기로 마음먹으니, 우선은 통풍을 생각해야 했다. 체내에서 요산을 잘 빼내주는 아스파라거스 녹즙을 가져가야 했다. 조카딸 규빈이가 성당에 가지고 다니는 작은 가방을 빌려서 아스파라거스 녹즙 세 봉을 비밀 봉지에 싸서 넣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통풍 발작 시에 먹는 조제약과 당뇨약, 혈압약, 비타민제 등을 병째로 챙겨 넣었다. 나들이를 하면서 이것저것 약을 챙겨가야 하는 내 신세가 다시금 처량해져서 한숨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약 가방을 챙기니 절로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모처럼 만에 한번 마음 놓고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제대로 술잔 나눌 생각을 하니 지레 흥겨워지는 기분이었다. <2>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의 한 음식점에서 모임을 하고 나올 때는 가방을 잘 챙겨서 나왔다. 2차로 노래방을 갔을 때도 카운터에 가방을 맡겼다가 잘 찾아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3차로 호프집에 갔을 때도 가방을 잊지 않은 듯싶다. 전체 27명 중 3차까지 함께 한 일행은 10명 정도였다. 일행 모두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동대문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상임이사로 계시는 소설가 권태하(과거 MBC 간판 드라마였던 <수사반장>의 작가로 활동하신) 선생에게서 받은 <동대문문화>라는 책이었다. 일행 중 다수가 그 책들을 한자리에 놓았는데, 나도 가방에 넣을 수 없는 큰 사이즈의 그 책을 거기에 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책과 함께 가방도 거기에 놓았을 것으로…. 그러니 책을 들고 나오면서 가방도 어깨에 메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술을 별로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오랜만에 마셔본 몇 잔이었기 때문인지) 거기서부터는 당최 기억이 흐릿하다. 책은 손에 들고 가방은 어깨에 메었을 것 같은데, 권태하 선생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고 권 선생과 만나기 위해 장안동 경남호텔 앞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내리고 보니, 내 손에는 책만 달랑 들려져 있었다. 나를 내려준 택시가 떠나고 나서야 퍼뜩 생각이 났다. '아니, 왜 내 손에 책만 들려져 있지?' 그 까닭을 아무리 인생 선배시지만 권 선생이 알 리가 있나. 가방을 택시에다 놓고 내린 것이 거의 확실했지만, 모든 기억이 불명확한 상태이므로, 어쩌면 가방을 호프집에다 놓고 나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어쩌면 노래방의 화장실 같은 데다가 가방을 놓고 나왔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아스파라거스 녹즙이었다. 세 봉지 중에서 한 봉지만 청량리 1차 모임 자리에서 마시고 두 개는 얌전하게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다행히 몸에서 통풍 기미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지만, 언제 몸 안에서 요산이 준동할지 불안한 상황이었다. 다음날 곧바로 집에 내려갈 것도 아니었다. 대전의 태평동 성당으로 가서 대자 한 사람의 혼인 미사에 참례할 일이 남아 있었다. 다음날 저녁때나 되어야 집에 도착할 텐데, 술을 꽤 마신 내 몸 속의 요산 찌꺼기들이 그때까지 참아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호프집과 노래방은 다음날 저녁때나 되어야 문을 연다고 했다. 별 수 없이 호프집과 노래방을 가보는 일을 권 선생께 맡기고, 나는 미안하고 무안하고 불안한 마음을 한 가슴 안고 다음날 오전에 대전으로 내려갔다. 나는 지난해 송년 모임과 지지난해 송년 모임 때 음식점에 휴대폰 충전을 부탁했다가 그대로 홀가분하게(?) 몸만 갖고 나온 이력이 있는 확실한 건망증 소유자였다. 그런 실수로 괜히 여러 사람 고생시키고 시간을 쓰게 했다. 또 다시 그런 불상사를 빚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집에서 잊지 않고 휴대폰 배터리 교환을 해 가지고 갔는데, 휴대폰보다도 수십 배나 큰 가방을 고스란히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다 놓고 온 것이다. <3> 대전에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의 호프집에 전화를 해보았고, 권 선생에게서도 연락을 받았는데, 호프집에도 노래방에도 내 가방은 없었다. 택시에다 놓고 내린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가방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택시에다 물건을 놓고 내린 경험은 아직 한 번도 없었는데, 마침내 나도 그 이력을 갖게 되었다. 택시나 전철 안에 물건을 놓고 내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여서 서울 지하철본부에서는 '분실물센터'를 운영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일들을 들을 때마다 차 안에다 물건을 흘리고 다니는 칠칠치 못한(?)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겨왔는데, 나도 이제는 그런 칠칠치 못한 사람들 속으로 합류를 하게 된 것이다. 가방 안에 귀중품은 없지만, 내용물들을 생각하면 조금은 창피스럽기도 하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내 가방 안을 열어보면 이런저런 약을 보면서 불쌍한 마음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 잃은 내 조카딸 규빈이가 성당에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잃었으니 규빈이에게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규빈이의 물건을 모두 꺼낸 다음 가방 안에다 아스파라거스 녹즙과 약병들과 양말 한 켤레만 넣었으니 가방의 임자를 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혹 택시기사가 가방의 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하여 가방 안을 살펴보았다면 아무 단서도 없는 사실에 섭섭한 마음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방 안에 가방의 임자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어서 택시기사가 주인에게 가방을 보내주는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또 한가지 미담의 꽃을 견인한 셈도 될 터였다. 그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귀중품은 들어 있지 않은 작은 가방 하나를 택시에다 놓고 내린 소소한 일이지만, 그 일을 놓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이제는 나 자신이 그저 불안하다. 몸에 지닌 물건을 잘 챙기며 살 자신이 없다. 다시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모처럼 만에 제대로 술을 마실 생각이면) 아스파라거스 녹즙이나 두어 개 주머니에 넣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을 생각이다. 또 휴대폰 배터리가 다 소모되었어도 음식점에 배터리 충전을 부탁하지 않을 생각이다. 만일 작은 가방 따위를 지니게 되면 가방 안에 꼭 명함 한 장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다시 택시나 어디에 가방을 놓고 내렸을 때 가방을 습득한 사람이 주인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 놓는 것도 미덕이 될 것 같다. 가방을 습득한 사람이 주인에게 좋은 마음으로 연락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또 한 가지 작은 미담이 될 터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택시 안에 놓고 내린 가방 안에 주인을 알게 하는 단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자꾸만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2007-01-30 13:54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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