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에파타(열려라)!” ----- 2007.2.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 |||
---|---|---|---|---|
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07-02-09 | 조회수59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2.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창세3,1-8 마르7,31-37
“에파타(열려라)!”
정문 밖의 수령(樹齡) 400여년의 느티나무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육중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고령의 히말라야시다 나무입니다.
이 두 나무들 수 백 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완전 침묵이었고 앞으로도 침묵의 나무들일 것입니다.
침묵의 스승인 두 그루의 나무들입니다.
이런 침묵의 나무들 앞에 우리의 말은 얼마나 초라한지요? 하여 침묵의 말을 듣고 싶어 자주 나무 곁으로 가게 됩니다.
입 있다하여 할 말 다하고, 귀 있다하여 들을 것 다 듣고, 눈 있다하여 볼 것 다 보고 살 수는 없습니다.
영혼은 고갈되고 내면은 황폐화 됩니다. 할 말만하고, 들을 것만 듣고, 볼 것만 보게 하는 분별력은 침묵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매일 밤의 깊은 침묵 후에 잠깨자마자 입술에 십자가(+) 표지를 하며 다음 초대송 후렴으로 입을 엽니다.
침묵에서 솟아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세상을 정화하고 향기롭게 합니다.
불필요하게 배설되어 세상을 오염시키는 말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바로 제대로 못 듣고, 제대로 말 못하는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귀가 열려야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있고, 입이 열려야 하느님 찬미와 감사를 제대로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시자, 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합니다.
이제 제대로 하느님 말씀을 듣고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을 상징합니다.
말 없는 침묵이기 보다는 안팎의, 영혼과 육신의 침묵입니다. 침묵의 그 깊은 중심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내면의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침묵을 통해 정화된 욕망이었더라면 결코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와는 그 나무 열매가 먹음직하고 소담스럽고 탐스러워 하나 따서 먹고 남편에게 주었다 합니다.
다음 대목이 오늘 독서 중 핵심입니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둘은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합니다.
열려서는 안 될 눈이 열린 탓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열린 눈이 아니라, 인간 탐욕에 의해 열린 눈입니다.
바로 하느님과의 일치의 삶이 깨진 내적 분열과 상처를 의미합니다.
에덴동산에서의 단순하고 질서 있던 삶은 이젠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고 혼란한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의 후예이기도 한 우리가 때때로 겪는 현실입니다.
크나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됩니다. 우리의 내적 분열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열어주시어 주님을 뵙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