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감기가 심하게 찾아왔습니다. 아침기도도 못 나가고 방에 누워 성경을 읽는데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신 부분에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 꽂혔습니다. 여러 번 읽은 구절이었지만 그날 그렇게 마음에 다가왔던 것은 감기를 털고 일어서고 싶은 깊은 내 바람에 조응하는 구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래 구절은 더 이상 읽지도 않고 바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일으켜 달라고. 그런데 기도 중에 마음 한구석에서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치유를 통해 보여 달라는 기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내 건강을 담보로 하느님을 시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습니다.
요사이 병원 방문을 하며 더 이상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이웃을 자주 만납니다. 감기에 걸린 내가 이 정도인데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환우들이나 가족들은 오죽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순간까지도 따뜻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믿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표징 없이는 자신의 신앙을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도 자신의 믿음을 아름답게 익혀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하느님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우리가 해결하고 싶어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새삼 배우고 있습니다.
감기는 이튿날 나았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담보로 하느님을 시험했던 내 기도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믿음은 어떤 기대나 조건 충족과 상관없이 하느님을 향한 무조건적 사랑과 신뢰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합니다. 더욱이 절실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시험하는 일은 믿음을 찾고 구하는 일이 아니라 믿음을 흥정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생각했습니다. 믿음은 바깥에서 시험하고 관찰하는 일이 아니라 어떠한 조건과 처지에서도 이미 우리에게 와 계신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며 살아가는 일임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김홍일 신부(성공회 · 나눔의 집 협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