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사랑하여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떠난 것을 눈치챘을 때, 그 사실을 확인하는 물음을 그 사람에게 던져야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직면하느니 애써 부인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두 번이나 반복되는 수난예고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묻기조차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내 신앙의 어리석고 어두운 그늘을 봅니다.
자신의 기대와 계획, 욕구와 생각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집착은 귀를 막고, 묻는 일을 두렵게 만듭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복음은 그 묻기조차 두려운 질문들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하느님 나라를 선택하라고 하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되다고 하고. 나의 영적인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의 실체도, 교회의 갱신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의 실체도 우리의 관심과 계획에 대한 집착으로 귀를 막고 묻기조차 두려워하는 불신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 깊은 부르심을 예감하고 묻기를 두려워하는 내 어두운 그늘이 문득 떠오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의 욕구·집착·기대·계획을 포기하는 것임을, 영적 진보와 성장은 정직한 질문과 직면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초월하여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새삼 되새깁니다. 내가 일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며 만나는 사람, 환영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세속적 성공이나 이익을 얻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인지,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돌려줄 것이 없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인지.
김홍일 신부(성공회 · 나눔의 집 협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