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베드로의 이 고백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체험을 통해 얻은 결론으로 완전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마닐라 E.A.P.I. 연수시절 산책길에서 만난 동료인 인도네시아 신부님과 그리스도론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신부님은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누구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서슴없이 ‘라뿌니(스승님)’라고 대답했습니다.
유기서원 2년차 때 나의 삶은 더 이상 기쁨도 의미도 없었으며 몹시 메말랐습니다. 이대로 수도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여겼기에 몇 달 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고 홀로 수녀원 기도실에 앉아 처연한 심정으로 십자가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십자가의 주님께서 ‘나는 이런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너는 나를 버리느냐?’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심정이 되어 어린아이처럼 발을 뻗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기쁘게 예수님을 선택하고 따르고 싶다는 갈망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제 수도생활의 동반자로 초대했습니다. 성녀는 용기와 열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사랑했습니다. 십자가와 무덤까지 찾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만난 제자인 성녀가 부른 주님의 호칭이 ‘라뿌니’였습니다. ‘라뿌니’란 매우 인격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칭호라고 생각되어 제게도 예수님은 제가 바라보고 따르기를 원하는 오직 한 분인 ‘라뿌니’입니다. 이 위기를 통해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주님을 ‘라뿌니’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위기를 경험하게 되는데, 신앙인들한테도 위기는 자신의 정체성과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확립하고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하는 은총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처럼 오늘도 예수님은 같은 물음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특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께.
정순옥 수녀(프라도 수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