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31) 사제서품 보류 / 하청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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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정자 | 작성일2007-02-26 | 조회수86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월 넷째주 사순 제1주일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 루카 4,1-13)
사제서품 보류
글쓴이 : 천안 신방동 성당 하청호 보좌신부님
"저 신학교 안 가겠어요."
신학교 원서 내기 한 달 전, 아들의 생각지도 않던 한마디에 아버지는 얼어붙은 듯 침묵하시고 어머니는 묵주를 쥐고 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셨다. 도망치듯 집을 나와 거리를 활보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휴~ 해방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리 답답하게 살았담."
가슴을 쓸어내리며 색다른 기분을 마음껏 느끼던 중 엇! 보좌신부님과 마주쳤다.
"청호야 어디 가니?" "............"
"할 말 있으니 사제관에 들르거라. 그런데 안색이 안 좋구나!"
쭈뼛대며 찾아간 사제관, 그러나 분명히 발씀드렸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저 이 길에 확신이 없어요. 신학교 가지 않겠어요!" "허허, 누구는 처음부터 확신이 있어서 가느냐? 성급하게 생각말고 들어가서 1년만이라도 살아보려무나! 아니면 나와도 된다." "예? 정말 그래도 되나요?"
10년 후 ~ "하 부제! 안되겠네, 자네 집에 가서 쉬고 있게." 신부님의 청천벽력 같은 한 말씀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시작에 망설임은 있었어도 10년 세월 너무도 기쁘게 이 길을 왔는데, 이제 와서 안된다니! 지금껏 굳게 믿어 온 이 길이 부르심이 아니었단 말인가?
반사회적 성향의 단체에서 치루어진 작은 누나 결혼식에 허락없이 참석한 일이 화근이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지금껏 세상과 멀어지는 법을 배우며 살았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거리를 넋 나간 사람처럼 걸었다.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공무원 채용광고가 눈에 띄었다. 나이 제한 30~31세, 경쟁률 몇 십대 일, 경남의 어느 곳은 경쟁률이 160:1 이었다. 이것도 만만찮군!
"아들! 걱정마요. 엄마가 떡 장사라도 해서 같이 살면 되지!"
어머니의 반응은 의외였다. 당신 뱃속에 아들 주신 날부터 30 여년 오롯이 사제직으로 봉헌하고 기도해 오신 어머니가 어찌 이런 말씀을....... 그 속을 알기에 어머니의 그 한 말씀은 더없는 위로가 되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이었다.
아하!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유혹과 시련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었구나!
40일을 굶으시어 허기에 지치셨던 예수님은 악마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는 모범을 보여주신다. 사순 시기의 첫걸음을 일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하느님의 자녀답게 온전히 살 것을 가르친다.
내가 참으로 하느님께 의지해서 사는 사람인지, 세상의 빵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인지, 서품보류라는 단식의 시간에 시험에 들었었구나! 그래! 허기져도 버티어내야 하는 게 시험이지!
다시 사제관을 찾아갔다.
"신부님! 저요, 사제 되고 싶습니다. 부르심에 확신이 있습니다."
ㅡ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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