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마음이 들어야 찾게 된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29-32)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요구한 표징은 묵시문학에서 표현된 대로 大파국 같은 것이었습니다.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열리며 새 예언자가 내려와 이방인들을 물리쳐주고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악한 세대라고 부르셨습니다. 자기들은 변하려 노력하지 않고 남들 더러 바뀌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남들이 못마땅하니 제 입맛에 맡게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는 셈이었습니다.
요즘 TV 프로그램 중에서 떼만 부리고 버르장머리가 없는 아이들을 반듯하게 고쳐주는 내용이 방영됩니다. 부모의 말은 전혀 안 듣고 엉떼를 부리며 갖은 말썽을 다 피우는 아이들을 부모가 인내를 갖고 변하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 하나 같이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합니다. 밥 먹는 자세에서 부터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 가족과 부모나 이웃 아이를 때리는 행동, 대들고 싸우려는 듯 고함치는 것 등등입니다. 모두 제 주장대로 받아 들여져야 만족하고,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엉떼부려가며 거절합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하지만 봐주기 곤란할 지경입니다. 그 아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변하는 것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추천하는 제대로 된 교육방법은 부모가 먼저 지혜 있는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살펴 사랑과 벌을 일관성 있게 베풀어야 합니다. 잘한 것은 칭찬해 주고 잘못한 것은 야단치는 것입니다. 무조건 떼를 부린다고 다 들어주면 잘못된 버릇을 고쳐줄 기회를 잃고 맙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보고 변하게 만들어 주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자기도 무엇인가 얻기 위해서는 조그만 노력을 정당하게 해야 하며, 그동안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절실하게 원한 것을 어렵사리 얻을 때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고 더 소중해진다는 체험을 가르쳐야합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구약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사람을 가르치시는 자세를 우리가 본받는 다면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구약에서 보여주시는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자세를 일관성 있고 시의에 맞도록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엄하게 꾸짖으십니다. 그들 스스로 회개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먼저 자신들이 변해야하지 남들이 변하게 되는 표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하고, 그래야 그 물맛을 제대로 느끼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야 그 우물이 소중하게 여겨지게 되는 법입니다.
남방의 여왕은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지혜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먼 이웃나라에까지 와서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이름 모르는 한 예언자가 외치는 소리만 듣고도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스스로 변한 것입니다. 남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리 쉽게 바뀔 수 있었는지요?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준비된 자만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요나를 니네베 사람들에게 파견하신 것도 그들이 회개할 가능성을 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유대인처럼 새로운 표징을 구하고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우리가 준비하고 기다려야한다는 자세는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