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신앙인들이 기도를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는 것을 자주 본다. 도깨비 방망이를 내리치듯이 하느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청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시는 분으로 믿는다. 이런 이들에게 오늘 예수님 말씀은 그러한 기도에 대해 확신을 가지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로 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찾고 두드리는 우리의 적극적인 행위 또한 요구하신다. 그 행위란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12절)는 황금률에서도 나타나듯이 이웃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야고 3,17) 것이다. 기도와 실천, 이 둘은 결코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도생활에만 전념한다고 실천을 소홀히 하거나, 실천을 핑계로 기도를 소홀히 한다면 완전한 신앙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교회의 거룩한 전례를 통해서 하느님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의무를 의식하게 된다. 에스텔의 기도(1독서)는 그녀의 용기있는 행위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은 그들이 가난한 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옷을 입힌만큼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오늘은 삼일절이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만 잠겨 있지 않고,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민족의 독립을 선포하고 만세운동을 펼친 날이다. 삼일운동 당시 2,000만 인구 중 그리스도인의 비율은 1.5퍼센트 정도였는데,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민족대표 33인 중 약 50퍼센트인 16명이 그리스도인이었다.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던 유관순의 용감한 행동도 독실한 신앙과 기도에서 흘러나온 행동이었다. 유관순이 기도할 때마다 함께 데리고 갔던 조카 유제한은 훗날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사흘 동안 기도만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뭔가 계시를 받은 듯 미친 듯이 기도를 마친 유관순의 얼굴은 온통 환하게 빛이 났고 말에 힘이 있었으며, 담대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살레시오의 집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