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구원은 모든 이들에게,
명시적으로 믿는 이건 믿지 않는 이건,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 중 1독서의 서두 부분,
다음 말씀이 즉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환자였다.”
천하장사 나아만도 병 앞에는 별 수 없습니다.
천형이라 일컫는
나병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하는 나아만 장수입니다.
제 아무리 힘센 용사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임금도,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리는 이도,
돈 많은 천하 재벌도,
안으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게 하는
불치의 병 앞에는 속수무책입니다.
하여 돈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잘나고 힘센 사람도,
병이나 죽음,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무력하고 무능할 뿐입니다.
그 누구도 병이나 죽음, 흐르는 세월을 당해 낼 자 없으니,
바로 이런 사실을 통해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병이나 죽음,
흐르는 세월 모두가 하느님 수중 안에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입니다.
이들이 없다면 사람들,
철나서 겸손해 지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나병이 없었더라면
나아만 장수 결코
겸손도, 하느님과의 만남도 없었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병이나 죽음도 없고,
흐르는 세월에도 전혀 영향 받지 않는 사람들을!
결론하여 병이나 죽음, 흐르는 세월 모두가
하느님 은총의 도구들입니다.
나아만은 결국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일러준 대로 순종하여
요르단 강에 내려가 일곱 번 몸을 담갔고,
그러자 그는 어린 아이 살처럼
새 살이 돋아 깨끗해 졌다 합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앞에 서서 힘차게 고백합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나병의 치유를 통해 겸손해져 하느님을 고백하니
육신의 치유와 더불어 영혼도 치유되어 깨끗하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의 나병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 예로 든 두 인물도
나병환자 시리아 사람 나아만과
시돈 사람 사렙타의 과부의 두 이방인이었습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후
믿음 없는 고향사람들을 떠나면서 예로 든 두 인물들입니다.
자기들을 빗대어 한 말씀에 화가 잔뜩 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산위에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 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합니다.
바로 병이나 죽음, 세월, 모든 죄악의 세력을 정면 돌파하여
부활의 승리의 길을 향해 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따를 때,
비로소 병이나 죽음, 세월, 그리고 모든 죄악을 넘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매일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영육을 치유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시는
참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주님, 저는 주님 말씀에 희망을 두나이다.
주님께는 자애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나이다.”
(시편130,5.7ㄴ참조).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