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부분 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 태어나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출생신고니 호적등재니 여러 가지 법적 절차를 거치게 된다. 죽는 일도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망신고니 사망진단서니 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는 동안에도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법의 테두리가 정해져 있고, 병원에 가는 일, 아이를 낳는 일,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미는 일에도 보이지 않는 법 절차가 있고, 이를 따라야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매일같이 우리 삶의 과정을 규정하고 기준을 정하는 법은 우리가 그 법에 동의하건 않건 간에 사회에 의로움을 담기 위한 우리 모두의 몸짓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도 어디선가 새로운 법을 쓰고 또 고치고, 다시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데서 오는 의로움과 율법을 완성하는 데서 오는 의로움이 있음을 구분하신다. 바리사이의 의로움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의로움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법을 지키는 의로움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해당된다. 곧 종교적 계명이 있는 그대로 지켜지는가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안식일에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목록이 만들어지고, 그 목록의 준수 여부가 한 사람의 의로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법을 완성하는 의로움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의로움이다. 계명을 지키되 계명 안에 담겨 있는 진실을 놓치지 않는 자세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현하는 율법 준수다.
사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리사이의 의로움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매주 성당에 나오고, 고해성사를 꼬박꼬박 보고, 선을 넘지 않는 생활로도 충분히 의롭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요구하신다. 율법 준수뿐 아니라 실제로 율법에 담긴 정신을 살아갈 것을.
최성기 신부(서울대교구 수궁동 천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