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첫째 가는 계명'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
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7-03-15 | 조회수54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첫째 가는 계명(마르12,28-34)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그것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가는 계명인가? 도대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즉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요, 숭배하고 우러르는 것이요, 봉사하는 것이다.
둘째,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이다. 우러르는 것이다. 왜 하느님을 숭배하고 우러러야 하는가? 하느님이 하신 일이 놀라워서이다. 그분이 하신 업적이 너무나 놀라워서이다. "야훼님 기리리라, 이 마음 다하여, 의인들 모임에서 큰 모임에서. 야훼님 하신 일들 하도 크시어, 그 좋아하는 이들 익혀야 하리로다. 두렵고 눈부셔라 당신의 일들, 그 의로우심은 영원하도다."(시편110,1-3)
"주님을 찬미하라, 그의 성소 안에서 우람한 그의 하늘에서 주님을 찬미하라. 그 하신 일 놀라워라 주님을 찬미하라, 그지없이 크오셔라, 주님을 찬미하라 나팔소리 우렁차게 주님을 찬미하라."(시편150 1-3) 즉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나를 위해 이루워 놓으신 위대하신 업적을 우러르며 경배 드리는 것이다. 다윗은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 원수들 무색케 하시고자, 불신자 복수자들 꺾으시고자 어린이 젖먹이들 그 입에서 마저, 어엿한 찬송을 마련하셨나이다.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와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시편 8)라고 찬미하였다.
그러나 정말 하느님의 위대하신 업적은 그리고 놀라우신 일은 나를 구원하시는 일이다. 하느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다. 그 모든 일은 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것, 이것보다 더 놀라우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창조주께서 하찮은 피조물인 나의 구원을 위해 당신 친히 목숨을 바치셨다는 것이야말로 엎드려 경배 드리고 우러러 뵈올 일이다.
마리아는 이러한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너무나 잘 알고 감탄하여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니 그분께서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을 알게 되면 하느님을 경배 드리지 않을 수 없고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요한 4,22-2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셋째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것이다. 봉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봉사하다"라는 말은 비위를 맞힌다는 것이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종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요, 하느님이 하라는 것을 하는 것이요,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즉 종으로서 주인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주인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은 항상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늘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나를 행복에로 인도해주신다. 따라서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만 가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 나보다 더 내가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시는 분,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 나보다 더 나를 위해서 희생하시는 분, 그분이 내가 믿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을 섬기지 않고 누구를 섬기겠는가? 그분의 뜻을 따라 가지 않고 누구를 따라 가겠는가?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니 내가 해야하는 것은 그분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요, 그분의 뜻에 나의 뜻을 맞추는 것이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이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고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즉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결국 산다는 것은 오직 한가지 즉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뿐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하느님을 사랑하다가 죽는 것, 그것이 인생이요, 행복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이요, 삶의 목적이다.
이렇게 내가 나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웃도 결국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이며 그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이다. 내 이웃이 곧 나의 양이 아니라 하느님의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잘 돌보아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유광수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