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친구들의 아버님이 부쩍 많이 돌아가신다.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나 둘씩 아버지를 잃어가는 친구들, 그리고 어느새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삶을 사는 친구들을 바라보게 된다. 씩씩하게 상주 노릇을 하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저 친구들처럼 아버지와 작별을 잘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안 계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씩 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나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로 그 어색함을 피한다. 마음속에 있는 따뜻함을 친근하게 전하는 데 아버지나 그 아들이나 영 낯설어한다.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성장하는 데는 두 가지 사랑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이다. 어머니 사랑은 “네가 어떤 처지에 있던지, 네가 상처 받고 시름할 때도, 혹 네가 큰 잘못을 하고 내게 돌아온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주고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사랑이다. 아버지 사랑은 “네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봐. 네 능력을 발휘하고, 네 좋은 점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봐. 그러면 넌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랑이다.
사실 복음서에서 요셉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늘 마태오복음처럼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자리에서 잠깐 소개되고, 루카복음에서 예루살렘에 아들 예수와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이야기를 끝으로 복음서에서는 요셉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다. 요셉을 소개하는 형식 역시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성모 마리아의 관계에서, 아들 예수와 관계에서 마리아의 배필로 구세주의 양부(養父)로 소개될 뿐이다.
늘 성가정의 배경처럼 소개되는 요셉의 모습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드러나지 않게, 서투른 감정 표현으로 우리 삶에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 내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이 있음을 묵묵히 깨우쳐 주는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복음서에서 배경으로 물러나 버린 요셉한테서 볼 수 있지 않는가? 오늘 하루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자.
최성기 신부(서울대교구 수궁동 천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