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앞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이라고 악담했다(요한 8,48 참조). 그런 까닭에 예수께 돌을 던지려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조금만 안다면 이 말이 얼마나 지독한 모욕인지 잘 알 것이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만도 못하게 취급했다. 그런데 예수께 ‘당신은 사마리아인이오’라고 했으니 그들이 이런 말을 한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팔레스타인의 눈물」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 책은 고난의 땅, 삶의 최전선에서 지켜내는 인간의 존엄과 품위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었다. 이 책에 ‘개 같은 인생’이라는 글이 나오는데, 글쓴이는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그의 개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려면 검문소에 팔레스타인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도 검문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기분에 따라 통과시켜 주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왜’라는 질문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개는 예루살렘 여권이 있기 때문에, 개 덕분에 그의 주인은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먼지가 융단처럼 쌓인 검문소를 통과하고 나면 온몸이 그야말로 먼지로 목욕을 한 것 같다. 그들이 일상에서 당하는 모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도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혜롭게 그들을 피해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왜냐하면 아직은 당신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신 지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여전히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구세주가 태어나신 곳에서 정작 그들은 구세주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며 같은 인간을 개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고 있으니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는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느님, 우리 모두 평화의 건설자가 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소서.’
정복례 수녀(성모영보수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