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극명한 대조를 통한 가르침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2 조회수706 추천수2 반대(0) 신고

 

 

<극명한 대조를 통한 가르침>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요한 12,1-11)




  요한 저자는 서로 반대되는 상황이나 인물의 성격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글을 썼습니다. 그리하여 독자가 무엇인가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특히 여러 군데에서 빛과 어두움, 영원한 생명과 죽음, 신앙과 불신앙, 생수와 목마름 등과 같은 대조를 통하여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한 편을 선택하도록 마련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와 마리아 마르타가 살고 있었습니다. 죽어서 3일이 지나 이미 썩어버린 라자로를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셨으니 가족들이 얼마나 큰 기쁨을 느꼈을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감동을 잊지 못하고 그 크신 은혜를 갚을 길 없었던 마리아는 평소 그녀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복음서에서 마리아는 사려 깊고 행동은 더딘 성격으로 그려집니다. 예수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 듣기를 즐겨했던 그녀입니다. 예수님 발에 엎드려 울음으로 호소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산란케 만들 줄 알았던 그녀입니다.(요한 11,20.33)


  그런 마리아가 전후사정을 헤아리지도 않고 보통 일 삯의 일 년치에 해당하는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 어치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습니다. 남녀의 신체 접촉이 금지되었던 시절에 그와 같은 돌출행동은 여러 가지로 문제를 일으킬 만했습니다. 아무리 오빠를 살려준 것에 감사하는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유다 이스카리옷은 그녀의 행동이 못마땅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이 말귀는 그가 얼마나 이재에 밝은지 보여 줍니다. 모든 것을 재물의 가치로 환산하려드는 그의 평소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을 합니다. 자기의 본심을 숨기고 겉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말하는 모습이 너무나 가증스럽습니다. 그의 말은 우리들이 흔히 내 뱉는 말과 너무나 똑같기 때문에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언제나 낯이 붉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는 흔히 떡을 나누어 주다보면 떡고물이 손에 묻는다는 속담을 당연시하고 삽니다.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일마저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게 됩니다.


  마리아의 행동은 얼핏 지나친 것 같아도 한 번뿐인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봉헌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깬 옥합의 장미향은 온 집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행위는 영원히 온 세상에 장미향을 풍기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행위는 길이길이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찬미를 드리는 행위는 이성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습니다. 아무리 비싼 재물이라 하더라도 생명을 다시 얻는 것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루카 7,47)


  자기가 받은 은총을 크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큰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은총을 받았더라도 그 은총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사랑마저도 적게 베풀 것입니다. 크건 작건 간에 자기가 가진 것을 아까와 하지 않고 봉헌할 수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 20여 년 전, 서울 신천동 본당 건립 시에 자신이 살고 있던 본당 근처의 J 아파트를 아무 조건 없이 봉헌하신 부부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조그만 시골 본당을 짓고도 남는 엄청난 거금이었습니다. 그 부부의 쾌척으로 많은 교우들이 감명을 받았고 쉽게 성전봉헌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행동은 언제나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의 행동도 그 당시 약간의 오해를 받았다는 것을 아울러 고백합니다. 그때 떠돌던 쑥덕공론을 들으면서 제 삼자 입장에서 제가 더 낯부끄러웠던 추억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자신은 그런 뜻있는 행동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제발 남의 선행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만이라도 지녀야 하겠습니다.


 

 

 

노래를 통한 주님께 찬미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의 선물인지 느끼게 해줄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