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십자가의 이치' - [오늘 하루도 ~ 홍성만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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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7-04-06 | 조회수74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3월 6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요한 18,1-19,42
보라, 십자가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이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이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그의 모습이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 십자가 안에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악의 세력들이 박혀 있습니다.
자기의 입지와 위치를 지키기 위해 본심과는 다른 불의와의 타협이 여차하면 사랑과 우정가지도 돈으로 계산하여 배반하는 인간의 속물근성이, 불안과 공포로 인한 비굴한 변신이, 악에 휩쓸리는 군중의 우매함이, 위치와 분수도 모르며 꼭두각시처럼 날뛰는 병사들의 분풀이가, 십자가 속에 박혀 있습니다.
이 악의 세력들은 한결같이 그 실체가 '자기'라는 곳에, 즉 자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여기서 제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이렇게 '자기' 자아에 뿌리를 둔 악의 세력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 서로 연결되어 의로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악의 세력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악의 실체가 계시됩니다.
제1독서의 말씀은 이어집니다.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야훼께서 뜻이 있어 하신 일, 그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입니다.
독서의 말씀은 이어집니다.
"그가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으면〔…〕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아드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내다보시며 부서지는 몸을 끌고 아버지의 뜻 속으로 좇아 들어가십니다.
"다 이루어졌다"는 아드님의 죽음, 십자가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향한 한없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를 실현하시고자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죽으셨습니다. 이 십자가 죽음 안에서, 아버지의 마음과 아드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성삼의 신비가 계시됩니다.
아드님의 죽음 안에서 실현되는 아버지의 마음, 십자가 안에서 계시되는 성삼의 신비, 그것은 인간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입니다.
- 그렇습니다.
끝없는 순종으로 인한 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의 한없는 용서와 자비를 낳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안에는, 십자가를 만든 죄, 그 이상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니 넘쳐흐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어느 만큼까지의 용서와 사랑이 아니라, 말 그대로 완전한 용서이고 자비이고 사랑입니다.
자아의 뿌리인 악의 근원으로부터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십자가, 이는 구체적으로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 2장 24절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나를 위해 생명을 걸며 나의 죄를 포함한 온갖 괴로움, 고뇌를 받아 줄 그 뿌리를 우리는 어디서 찾을 것입니까?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십니다.
-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자아의 뿌리인 악의 실체에서부터 우리를 건져내고 구출하여 줍니다.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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