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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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 사제가 감사드리기까지 . . . . [최시영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0 조회수1,275 추천수18 반대(0) 신고

 

 

 

 

 

 

 

사제이기 때문에 갖지 못하는 경험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가정의 가장으로서 구체적으로 책임을 지 ,

 사람의 배우자가 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안에 포함된 기쁨과 감사 애환을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시는 분들과  함께 공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 상실감이나 

무겁게 내리 누르는 어떤 결핍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수도자로서의 길을 선택했던  순간에

비록 암묵적이긴 했지만 

이런 경험에 대한 자발적인 포기가

이미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도생활 25년을 나도 모르게 훌쩍 넘어버린 지금

 길을 선택했던  당시에는 분명히 의식하지도 못했고 

감히 바라지도 못했던 것들이  포기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선명하게 보게 된다.

 

비록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포기였지만

그리고 나아가 

그동안 성실한 종으로서 살아오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 포기 안에

아주 소중한 선물을 풍성히 담아 놓으셨다

 

 삶이 나에게 의미를 주고 기쁘게 하였지만 

 포기 안에 이런 선물을 담아 놓으셨음을 새롭게 보게 되니 

그분의 깊은 배려에 잔잔한 감사가 밀려온다.

 

 선물을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한 것은 

사제가   본당에서 드리기 시작한 주일 새벽미사를 통해서였다.

 

지금까지 지속적인 것은 아니지만

합하면 대략 5 넘게 

주일 새벽미사를 본당공동체에서 드렸었고

지금도 지난 5월부터 새벽미사를 나가고 있다

 

 기간을 통해 제일 감사드리는 분들은

바로 내가 본당에서 만났던 신자 분들

특히 고백소에서 당신들의 온갖 아픔과 고통

좌절과 암담함을 나누어 주신 소중한 이웃들이다.

 

물론 고백소에서 (혹은 면담을 통해서

내가 이분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적은   번도 없었다

내가 해결해   있는 고통과 십자가였다면 

그분들 능히 스스로도 해결하고 남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제로서 

나는 고백소에서  세상을 배웠고,

복음을 배웠고

나의 이웃들을 만날  있었고

이분들 곁에 있는 예수님을 만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분들 앞에  있는 나를 만나고 알게 되었다.

이런 의미로 내가 지금과 같은  사제로 양성됨에 있어서

제일  부분을 담당하신 분들이 있다면 

바로 나의 가난한 이웃들

 목자 없는 양떼와 같은 그분들일 것이다.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헤아릴  없는 아픔이 있는지... 

98 IMF 위기  30여년 다니던 직장에서 갑자기 쫓겨난

어느 가장의 불안과 당혹감... 

 

가족 문제로 결혼이래로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분들,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가족을 두신 분들의 좌절과 절망감... 

 

새로운 가능성을 바늘구멍만큼도 찾지 못하는

암흑  가운데에 내팽개쳐진 분들을 만났다.

 

 고통이 자신의 약함으로부터건 

아니면 타인의 약함이건 

아니면... 

그야말로 도저히 받아들일  없고 이해   없는 것이건 

우리 인생에 수많은 아픔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사제가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이런 아픔들을 만날  있었을까?

새벽 미사 전후에 고백 성사를 보시는 분들이 있을  

시간이 허락하는  그분들의 고백을 듣고 돌아온다

 

그리고 많은 경우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의

고백을 듣고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의 발걸음도 몹시 무겁다.

발걸음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도 몹시 힘들다

 

이런 횟수가     쌓일수록

힘든 것이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상하게도 고통에  민감해지고 있었다.

 

7-8  어느 일요일,

그날도 새벽미사를 드린 

고백성사를  시간 가량 듣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분들의 삶의 애환을 듣고 돌아오는 그날도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오는 나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어느새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 내가 사제직을 조금  이해하게 되고

 깊게 감사드리게  시점이 있다면

바로  때부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무거운 발걸음과 마음으로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순간 

갑자기 아주  감사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왔다.

 

고백소에서 자신들의 아픔을 나누어 주셨던 

그분들에 대한 감사였다

 

고통은 그분들이 겪고 있지만 

당신들의 고통을 통해서 이렇게  사제가 기도하게 하시고 

 사제가 이웃의 아픔에 깨어있게  주시는 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간   사실 나에게 복음은

 이상 박제된 2000 전의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복음은 오늘의 이야기가 되었고,

복음 속의 예수님과 군중도 과거의 인물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만나는 그분들이었고,

지금 그분들 곁에 함께 하시는 분이셨다.

 

마르코 6, 30-56  복음구절은

나에게 일어난 이런 일들을  표현해 주고 있다

본당에서 만난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셨다는 것을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그분들은 

예수님의  측은함이...

애간장이 타는 것, 혹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이 모든 것으로도 표현이 부족한 

그야말로 견딜  없음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가르쳐 주셨다.

 

사실 돌아오면서 내가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한 것은 

견딜  없었기 때문에 기도한 것이었다.

 

군중을 일일이 헤쳐 보내신 다음 산으로 오르셔서

밤을 새워 기도하신 것도 

본당의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도 기도하셨구나.’ 

그냥 피상적으로만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서 만났던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그들을 위해서 

그날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포기한 것은... 분명 내가 잃어버린 것이지만

예수님과 내가 만난 어려운 이웃들은 

잃어버린  대신에 

아주 소중한 선물로  자리를 채워주셨다.

 

당신들  존재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셨다

  번도 직접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하였지만 

주님께서는 틀림없이 그분들이 알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분들의 고통이 그들 이웃을 살게 한다는 사실을....., 

 

 

                                  

 

                              ( 예수회 이냐시오 영성 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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