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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과연 부활했는가?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2 조회수1,250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10
 
그 무렵 1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 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3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4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5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6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우린 TV나 컴퓨터 등 시청각 효과로 강하게 호소하는
각종 광고나 선전 등을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애인, 지인들의 얼굴보다 훨씬 더 많이 보며,
무의식적으로 광고 선전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살아간다.

 

 

거리 등 우리가 거주하고 생활하는 모든 공간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문구나 사진들이

각종 광고와 선전이 아닌가 한다.

 

 

부활 대축일을 보내는 4월이다.
엷은 분홍빛으로 눈꽃처럼 꽃송이를 흩날리는

가로수 벚꽃들과 노란 개나리꽃들

그리고 아무 공간이나 아무렇게 비집고 피어난
유채꽃들은 내게 봄날,
소생의 신비와 생명의 기적들을 전달해 주며
나를 하염없이 기쁘고 행복하게 해 준다.
내게 아무런 기대나 조건 그리고 요구 없이
나를 충만하게 해 주고 어떤 부족함도 느끼게 하지 않는다.
그저 있음, 존재 그 자체가 선물이고 아름다움이며
생명임을 절로 느끼게 해 준다.

 

 

길을 걷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봄꽃들의 향연과 향기에 황홀이 머물러봄도
계절이 내게 주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존재함 그 자체로
내게 충만한 생명력을 선물해 주며
내 몸과 영혼을 소생시켜 주고 있다.

 

 

내 안에도
주님께서 거저 무상으로 주신
생명력이 있다.

 

 

부활 대축제란,
바로 봄꽃처럼 스스로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의 생명력을 피워내고
나 스스로 그 생명력을 누리며 충만해지는 게 아닐까 한다.

 

 

부활은 먼저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빈 공터나 도로변 구석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유채꽃들이나 이름 모를 잡초들처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력을 나도 그처럼
피어나게 하고 가꾸고 성숙시켜나감이
바로 나의 부활이다.

 

 

타인을 부활시키고자 수고하기 보다
먼저 나 스스로 부활하여져야
부활의 기쁨과 은총을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2007년 부활 대축일을 보내며,
나는 과연 부활했는가? 자문해 본다.

 

 

그건 바로
물질적인 충족감이나 풍요로움을 떠나
부족함 없이 내 존재 자체로
예수님이 내게 주신 생명력을 스스로 누리고
기뻐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외부적인 여러 자극을 통해
내가 미처 의식하거나 필요로하지 않는
궁핍이나 결핍,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눈길을 약간 돌려보면,
가로수 옆의 건물이나 빌딩 벽에 붙은 온갖 선전 광고물들은
끊임없이 내게 요구하고 나를 충동질하고 나를 불러세운다.

 

 

"당신에겐 이것이 없지요?
이것이 없어 불편하거나
남들과 비교되지는 않은지요?
아름다워지고 싶지 않으세요?
제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저를 빨리 구입하세요...."

 

 

로맨틱한 모습의 남녀가 함께 커피 마시는 선전을 보면
나도 커피를 마시면 로맨틱하고 분위기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또, 깜찍하고도 예쁜 소녀가 선전하는 초콜릿을 먹으면
나도 참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소녀가 될 것 같다...ㅎㅎ

 

 

헨리 나웬 신부님께서는
각종 선전물과 광고 가득한 대중 매체 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사람의 기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물질적으로 빈곤한 나라의 국민 행복지수가
물질문명의 첨예한 혜택을 누리는 국민보다

훨씬 높다고들 하지 않는가.

 

 

복음으로 돌아가,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베드로는 분명히 부와 명예를 세월 줄
물질적인 소유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주 당당하게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베드로 사도는
과연 무엇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 역시 부자도 아니고 명예나 지위도 지니고 있지 않은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교회에서도 평범한 평신도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세속을 초월한 도인처럼
돈이나 명예 등에 영 초연하지도 않으며

척~하고픈 마음도 없다.*^^*
물질 문명시대와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편리함과 유익함 그리고 신속함을 누리며
가끔 그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하지만,
세속의 가치보다는 영적인 가치에 무게를 두고자
힘겨운 노력과 투쟁을 하며
영적인 세계에 속하고자
오늘도 부족하지만
내 나름대로 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내 느낌을 쓰는 중이다.

 

 

베드로 사도는 불우한 한 형제에게 줄 수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 형제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딸랑이는 동전 몇 개?
혹은 지폐 몇 장?
순간적인 연민의 마음?
무관심?
모른 척해 버리는 뻔뻔스러움?

 

 

베드로는 모태에서부터 장애인인 한 형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오늘 주었다.

 

 

오늘 당장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돈 몇 푼이나 동정심보다는
그 형제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준 것이다.

 

 

거지로 남들의 발밑에서 인격과 인품조차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한 형제를
벌떡 일어나 걷게 하고
껑충껑충 뛰게 한 건,
베드로가 그에게 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힘이었다.

 

 

그 사랑이 그를 걷게 하고
자신의 삶을 향해 껑충껑충 뛰어가게 하였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부활 축제를 지내며,
나 또한
베드로 사도처럼
은도 금도 없지만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력으로 충만해져
"내가 가진 것을 당신과 그리고 세상에 주겠습니다." 라고
당당히 선포하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쇼팽, 로시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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