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길 안내… "어이쿠, 이를 어쩌지?!" 그 운전자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엊그제(10일) 있었던 본의 아닌 실수 하나가 못내 잊히질 않습니다. 어찌 보면 소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이어서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무거운 '기억의 짐'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곧바로 집을 나섰습니다. 또 하루 걷기 운동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오후에는 걷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내 늘어진 팔자를 하느님께 감사하며(매일같이 걷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 불행한 신세에 대해서도 감사하며), 바야흐로 갖가지 봄꽃들의 대 향연이 펼쳐지는 대지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동네를 완전히 벗어나서 외곽도로 사거리를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안면도 방향으로 가는 길과 만리포, 안흥, 학암포 등으로 가는 길이 위아래로 겹쳐진 지점이어서, 그곳을 통과할 때는 내 옆에 차를 세우고 길을 묻는 운전자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친절하고 상세하게 길을 알려주면서, 그 운전자가 내게 길을 물은 것이 곧 행운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확실하고 상세하게 길 안내했는데…
그 날도 내 옆에 차를 세우고 길을 묻는 운전자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방향을 묻는 것이 아니고 태안 읍내의 '수산업협동조합'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운전자로부터 "수협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지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냉큼 '수협복지회관'을 떠올렸습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수협 사무실과 '바다웨딩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수협회관은 각기 다른 곳에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나는 그 순간 수협 사무실은 까맣게 잊고 수협회관만 떠올렸던 겁니다.
그래서 냉큼 확실하고 상세하게 길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저기 신호등이 있는 지점에서 우회전을 하세요. 그리고 언덕길을 내려가면 바로 사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다시 우회전을 하세요. 거기에서 300m쯤 가면 신호등이 있는 우체국 앞 사거리와 만나는데, 직진으로 통과를 해서 또 300m쯤 가면 다시 신호등이 있는 군청 앞 사거리와 만납니다. 우회전을 하면 군청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좌회전을 하세요. 좌회전을 하시되, 좌회전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또 하나 있는 작은 길로 들어가세요. 그러면 곧바로 수협이 나옵니다."
이 정도면 아주 상세하고도 정확한 설명일 터였습니다. 운전자는 고마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니까 우회전 두 번에 좌회전 한 번이군요?" "그렇지요." "예,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성 운전자는 머리를 숙여 내게 사의를 표하고 다시 차를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그 승용차가 언덕 위에서 우회전을 하는 순간 내 머리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왜?! 아이쿠, 이를 어쩌지?!
'가만있어라. 저 사람이 내게 물은 것은 수협회관이 아니라, 수협이었지? 그래, 맞아. 수협 사무실을 찾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내가 왜?! 아이쿠, 이를 어쩌지?!'
이미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차를 쫓아가 붙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완전히 착각을 한 나머지 엉뚱한 곳으로 가게 했으니, 보통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온몸에서 맥이 풀렸고 등에서는 진땀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운전자가 엉뚱한 곳을 찾아가서는 곧 잘못 왔음을 알고 다시 길을 물어 더 어렵게 수협 사무실을 찾아갈 것을 생각하니 이만저만 미안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내게 길을 물은 지점에서 수협 사무실은 좀더 가깝고 찾기 쉬운 곳에 있었습니다. 우회전을 한 다음 언덕 아래 사거리에서 직진을 하고 100m쯤만 가면 왼편 길옆에 수협이 있으니 길을 알려주는 것도, 찾아가는 것도 수협회관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습니다.
'어째서 그 순간에는 수협 사무실은 아예 머리 근처에도 오지 않고 수협회관만 머리에 떠올랐을까? 이것도 나이 탓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나는 묘한 의문으로 계속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운전자가 수협회관에서 잘못 왔음을 알고 내 모습을 떠올리며 욕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나는 걷기 운동을 할 때는 꼭 '묵주기도'를 하기 때문에 그때도 묵주를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묵주를 쥔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그 운전자에게 길 안내를 해주었던 거지요.
그러니 그 운전자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 손에 들려져 있던 묵주도 함께 떠올릴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어이없고 섭섭한 마음을 가질지도….
나는 걷기 운동을 하면서 내 실수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본의 아닌 어이없는 실수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운전자에게 사과를 하는 뜻으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운전자의 모습을, 미소 지은 얼굴로 내게 감사하던 그 모습을 계속 떠올리면서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길을 묻고 가르쳐 주는 인생길에서…
그 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그 실수 얘기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젊은 사람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 주셨고, 아내는 내가 그 운전자를 생각하면서 묵주기도를 했으니 오히려 더 좋은 일을 한 셈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 안내를 해주는 경우는 누구에게나 종종 있을 터였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나에게는 그런 일이 꽤 많지 싶습니다. 요즘 들어 등산이 아닌 걷기 운동을 하면서 그런 일이 좀더 많지 싶고….
그런데 그동안 길을 잘못 알려준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의 실수가 아마 처음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을 잘못 알려준 죄로 누군지 모를 사람을 위해 오래 기도를 한 경우도 이번이 처음일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지만(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또다시 내가 그런 실수를 할 경우에는 본의 아닌 실수로 손해를 끼친 누군지 모를 사람을 위해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테니, 그것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실수를 빨리 알아차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요.
2007-04-12 10:0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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