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루카 24,`30)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루카 24,`424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요한 21,`13)
지난 수요일·목요일·금요일 복음 가운데 일부분이다. 오늘 복음 말씀 가운데서도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예수께서는 음식을 드시거나 나누어 주시면서 사람들을 만나셨다. 그만큼 음식이 사람 몸을 살리고 사람 관계를 푸는 데 소중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내 손을 움직여 주신다는 것을. 그러기에 내가 읽고 묵상한 성경 말씀이 먹는 음식 이야기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농사꾼인 내가 쓰기 부담스럽지 않게 말이다.
갑자기 온 나라에 ‘웰빙’ 바람이 일고 있다. 여태 살면서 듣지도 알지도 못한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사람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손님이 알아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는데, 왜 요즘은 도시마다 무농약이니 유기농이니 하는 농산물 가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한겨레 초록마을·한살림·한마음·우리농에 무슨무슨 생협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유기농산물을 구입하여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채소·분유·주스·쌀·과일 가릴 것 없이 ‘유기농, 유기농’ 하면서 몰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다. 아기 둘 가운데 하나가 아토피나 알레르기 체질을 안고 태어난다는 말이 들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사람과 자연을 살릴 참된 대안은 내놓지 않고 ‘유기농’이란 말만 늘어놓으면서 돈놀이에 정신이 없으니 어찌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겠는가.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서정홍(농부시인 · 마산교구 삼가공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