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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를 문 불 뱀을 바라보라.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7 조회수869 추천수12 반대(0) 신고

 

 

<너를 문 불 뱀을 바라보라.>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7-15)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민수 21,8)

  민수기에 나오는 이 구절은 광야에서 생활에 지겨워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자 하느님께서 불 뱀을 보내시어 물어죽게 만드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께 나와 뱀을 없애주기를 기도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구리로 만든 불 뱀을 기둥에 매달아 그것을 바라본 자는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기서 구리 뱀은 주술적 의미를 갖는 물건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의심하고 따르려하지 않아 생긴 결과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뱀은 인생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것의 상징입니다. 슬픔과 고통, 질병과 죽음, 불행과 무의미, 허무와 부조리 등등 인간이 겪어야할 존재론적 한계를 뜻합니다. 그 전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탓을 돌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구약성경 구절에서 히브리인들의 언어 표현이 “결과론적 목적문의 형식”을 쓰고 있습니다. 민수기 본문 내용에 쓰인바 곧이곧대로 하느님께서 벌을 주시려고 뱀을 풀어 놓으신 것으로 알아듣기보다는, 인간이면 겪어야할 고통과 죽음을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구원해 주시려한다는 목적문으로 알아듣는 것이 현대인인 우리들에게 더 이해하기 수월합니다.


  그런 죽음과 같은 부조리, 허무함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죄를 지어서 그것을 받아 마땅한 것인지 따져 묻기보다, 결과론적으로 하느님께서는 치유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치유의 방법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인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명령에 따르는 길입니다. 하느님이 하라고 하셨으니 하는 것입니다. 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 것이라고 했으면 그대로 쳐다보면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인간 구원을 원하고 계신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원하시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찬미가를 필립피서 2장 6-1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6-11)


  예수님께서는 굳이 인간이 되실 이유가 없으셨는데도 인간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로부터 이 땅에 파견되셨습니다. 또 그 사명을 온전히 순종하여 죽기까지 따르셨습니다. 이렇게 들어 올려진 예수님의 몸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낱낱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사막의 교부를 찾아 왔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일찍 여의어 단 남매만 남게 되었습니다. 넉넉했던 재산은 사악한 집사의 속임수로 다 빼앗기고 자신은 전쟁터에 끌려가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나마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니 여 동생은 반쯤 실성한 채 거지꼴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동네 청년에게 몸을 더럽히고 수치심으로 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빠가 돌아오기만 기다렸으나 시간이 흐르다보니 막상 돌아온 오빠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딱한 사정을 어디 가서 풀 수는 없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생각하며, 덕이 높다고 소문난 그 교부를 찾아 왔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 한 말씀만이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왜 이렇게 험한 꼴을 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더 살아갈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 교부를 처음 만나고 절을 하고 일어서는 순간 그분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아주 깊고 그윽한 눈이었습니다. 깡마른 몸집에 얼굴은 그을었으나 눈만큼은 호수처럼 맑았습니다.

“참 고생을 많이 했구먼. 잘 오셨네.”

“우선 먼 길 오느냐 수고했으니, 몸도 쉴 겸 여기 내가 마련한 차나 드시게”

 그 교부는 아주 정성껏 물을 끓이고 천천히 차를 우려내어 잔에 따랐습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온 방안에는 정적만 감돌고 있었습니다. 교부께서 아주 천천히 차를 마시니 그도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잔이 비니 또 한잔을 따라 주셨습니다.


  교부와 마주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니 순간 온 세상이 고요해져 잠시나마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지는듯했습니다.


  교부께서는 그저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자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너무 힘들어 하지 말게 하시는듯했습니다. 어렵사리 그간 마음에 맺혔던 이야기를 다 말씀드리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훔치며 한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교부는 그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귀를 세우고 집중해서 들어 주었습니다. 간혹 머리를 끄덕이시면서. 이야기가 다 끝나자 다시 차를 따라 주셨습니다.


  오랜 여행의 여독이 밀려오고 따뜻한 차를 마신 덕분에 잠이 쏟아졌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잠이든 그는 잠시 정신을 잃었나 봅니다. 얼마를 푹 자고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자신은 침상에 눕혀있었으며 그 교부는 옆에서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눈길이 마주치니 예의 그 맑고 그윽한 눈이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퍼뜩 깨달았습니다. 아! 이분이 나를 이렇게 지켜보고 계셨구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계셨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날 여명이 트자 그는 다시 동생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교부께 아뢰었습니다. 그 교부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허락한다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길을 따라 나서 정오가 될 때까지 동행해 주었습니다. 다만 곁에서 아무 말도 없이 반 발짝 뒤에서 따라 걸으셨습니다. 걸음이 빨라지면 빨라지는 대로 느려지면 느려지는 대로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인생이 물소 뿔처럼 혼자 걸어가는 것인 줄 알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라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그 누군가는 나를 진정으로 안타까워하며, 내가 겪는 이 고통이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 그 종류는 달라도 다 같이 겪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도 그 누군가처럼 진정으로 곁에서 머물러주고 기도하여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부는 침묵의 행동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에게 전력으로 집중하는 것이라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지금 사랑하는 누이동생에게 가서 곁에 머물기 위해 길을 다시 나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보여주신 것도 이런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니고데모같이 자신을 낮추고 진리를 들으러 온 사람은 쉽게 그 깊은 집중의 자세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돌아가 예수를 위해 힘든 증언을 하였고, 돌아가신 예수의 시신을 거두었습니다.

 

  언제나 곁에 함께 있겠다는 것을 기둥에 매달린 구리 뱀을 통해 깨달으라고 보여 주신 하느님처럼,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저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십자가에 매달리시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죽음에서 까지 동참하시는 하느님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집중하시는 주님,

  십자가에 매달리면서까지

  당신의 사랑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언제나 제 곁에 계신다는 것,

  그것을 깨닫기가 이리도

  힘들었나이다.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당신 손길 닿지 않는 곳이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

  주여, 감사하나이다. 아멘.

 


  
01.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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