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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을 열어라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9 조회수824 추천수6 반대(0) 신고

마음을 열어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화와 자유를 주셨어도 방종하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착각하여 오해를 마치 정석인 냥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기에 다음과 같은 부활의 참모습을 나누려 한다.



부활의 진수를 알려면 그분과의 만남의 뿌리가 든든하여야 한다. 제자들도 한때 그 뿌리가 흔들렸기에 우왕좌왕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유령으로 보기도 했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간 사람이 없었기에 말이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잠시 산 상태로 누워 있다 가는 경우는 있어도 평소 때와 같이 활동을 했던 그런 모델은 없었기에 사람들이 그 부활이라는 새로운 양식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아주 조용하게 가져 오셨고, 놀라 자지러지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을 더 부드럽게 만드시면서 그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는 바로 평화가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혼란과 공포를 만들고 싶지 않으셨다. 가뜩이나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 상처받고 무서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어려움을 안기기 싫으셨을 것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더 이상 예루살렘을 공포와 두려움의 도시로 만들기도 싫으셨기 때문에, 그분은 아주 더 조용히 제자들에게 다가가셨고, 믿음이 무엇인가를 확신시키는 그런 방법으로 다가가셨다.

 

즉 조용한 가운데 말씀으로 다가가셨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당신을 사람들에게 전하셨듯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음성으로 다가가셨다. 같이 대화를 해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음성을 제대로 들려주시고 듣는 순간에 그분임을 알아채는 제자들이었다. 여기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들을 수 있는 귀와 마음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관상과 묵상을 할 때 오관을 동원해서 하느님과 통교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루 이틀 훈련을 해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착각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그분과의 대화하려는 강력한 의지 안에서 그분의 은총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테면 예수님께서 수난 전에 산에 가시어 기도하시는 중에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셨으면 땀샘을 통해 피가 흘러나오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가 어느 정도 차원의 기도를 할 때 그분의 음성이나 오관으로 맛 볼 수 있는 그런 차원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적어도 그런 훈련과 영적으로 깨어 있는 나의 청각기능과 마음의 기능이 제대로 있어야만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예를 들어본다. 일본에서 신학공부를 다 마쳐갈 무렵 참으로 이상한 마음이 생겼다. 더 이상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 것이었다. 공부를 해야 할 수사가 공부가 싫다니 말이 되는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싫은 건 싫은 것이지. 그래 한 삼일 고민하며 기도 해 보다가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아 원장신부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내적인 변화를 소상히 알리니, 우선 그런 마음까지 나눠주어 고맙다는 것이었고, 그럼 뭘 어쩌면 좋겠느냐고 묻기에, 한 일주일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했더니, 그냥 그러라는 것이었다.

 

학교 일주일 안 가는 것이 뭐 대수냐는 것이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그래서 공식 허가를 받고, 새벽미사 후 조용히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물병 하나를 챙겨가지고 동경근처의 높은 산을 일주일 동안 아무 말 없이 홀로 오르고 또 올랐다. 대화란? 그냥 자연과의 대화였다. 나무와 새와 시냇물과 하늘의 맑은 공기와 흐느적거리며 흘러가는 구름들과 대화를 하며 그 안에 하느님의 숨결이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살아온 생을 다 되짚어 보았다. 틀이 없는 그 상태에서의 성찰이자 죄 묵상도 동시에 이뤄진 그런 시간이었다. 만 일주일이 지나갈 무렵, 꿈이 나의 무의식 상태를 찾아들었고, 그 꿈 안에서 나는 부활하신 나의 어머니를 만났다.



하얀 소복이지만 너무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꿈에 오셔서 나를 명동 성당의 성모동산으로 데려가셨고, 이미 그 마당엔 큰 아름다운 상이 하나 차려 있었다. ‘아들아 이 상이 너를 위해 준비된 상이란다. 그래 이상을 받고 싶지 않으냐?’

 

상도 상이지만 예쁜 어머니를 생시처럼 만나니 얼마나 기뻤던지, ‘어머니 제가 왜 이 상을 안 받겠습니까? 어머니 사랑합니다.’ 하는데 이미 기쁨과 환희의 눈물이 귓전을 건드리는 것 아닌가. 감사합니다. 성모님! 예수님! 저의 어머니를 당신나라에 받아 주셨군요. 이렇게 저를 초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부활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암울하고 괴로운 시간이 온다 해도 그 안에 반드시 그분의 부활의 신비의 모습이 있음을 믿어야한다. 그러면 그 분 안에서 생경한 부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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