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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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웅열 | 작성일2007-04-21 | 조회수51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교부들의 말씀 - 이 상 규 야고보 신부 ♣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다. (집회 6. 16) 우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며 그분 안에서 성장하고 완성된다. 우정은 상처받기 쉬운 인생살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한 치료제이기도 하다. 역경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보루요, 위안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것 마저도 벗 안에 계신 주님의 위로인 것이다. “나는 친구들의 사랑에 전적으로 나를 던집니다. 그리고 이 사랑 속에서 괴로움을 모르고 휴식을 취합니다. 정말로 친구 안에는 하느님이 계심을 느낍니다.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나를 맡기고 안심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서간 73. 10) 그러나 인간관계로 맺는 우정에는 확실히 결정적인 제약이 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가 ‘영혼의 반쪽이라 해도, 내가 네가 될 수 없으며, 나 또한 네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긴 어느 때는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을 바에야. . . 그러면서도 벗을 구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은 마침내 완전한 일치를 바라는 희망의 보챔이라고나 할 까. . . . “그러나 세상살이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우정으로 서로를 묶은 이들임에도, 물질의 방해와 영혼의 불완전한 일치로 인해 그들의 일치는 완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서간 249. 1)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감추어진 허물들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며, 서로 간에 평화를 얻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성실한 친구가 되는 길이다. 오늘의 묵상 : 우리들의 만남도 우연이 아닌 것처럼 진정한 우정을 누릴 수 있는 것마저도 우리는 주님께 기도드리면서 호소해야합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우리의 뜻과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우리는 하느님을 찾으며 그 분께 의탁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친구들과의 인연도, 이웃들과의 인연도, 그뿐만이 아니라 부부간의 인연, 부모자식들의 인연도, 우리의 뜻과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가요? 오로지 주님께 의탁하면서 우리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애절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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