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대구 파티마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어느 암 환자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절에 다니셨던 분인데, 저와 만나면서 성경을 읽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혜로 치유되어 부활의 새 생명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는데 그래도 생명을 건진 기쁨이 너무나 크기에 마음 아파하지 않고 언제나 기쁜 모습으로 많은 이야기를 제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바쁜 일과 중에 하염없이 그분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조금씩 조급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측은한 마음으로 들어주다가 점점 더 급한 환자에게 마음이 갔고, 그런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이야기만 끝없이 늘어놓는 그 자매님에게 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예, 수녀님. 수녀님 말씀대로 제가 말이 좀 많지요? 눈이 멀어 보이질 않으니 제 앞에 계신 분만 생각하고 미처 주변을 생각하지 못했네요.”
이 대답을 듣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매님은 그만큼 나를 신뢰하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 신뢰를 먼저 보지 못했던 것인가?’ 그 자매님의 마음을 뒤늦게 깨닫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부활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는 말도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게 자매님이 저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하느님을 향한 마음 자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고 하신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체험한 사람은 이렇게 하느님께 완벽한 신뢰를 하게 됩니다. 완벽한 신뢰로 기도할 때 단순한 마음으로 쉽고 빠르게 하느님의 현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기도 중에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않도록 애쓰십시오. 앞이 보이지 않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상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던 자매님처럼 우리도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세영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