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성모 발현지를 따라 성지순례를 하던 중 파티마에서 체험한 환희와 평화의 밤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묵주기도와 성체거동이 있는 날 각국에서 3만여 명의 인파가 모였습니다. 성지순례를 온 나라의 대표가 제단 앞에 나와 자기 나라 말로 선창을 하기로 했는데, 영광스럽게도 제가 한국 대표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우리말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이라고 선창을 하자 모두들 우리말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받는 것이었습니다.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선창을 했으나 모두들 일체감을 느끼며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마치 오순절 성령 강림을 재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는 중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성체거동을 앞두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신자 중에 비를 피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체거동을 하는 동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지고 온 우산과 양산을 조용히 펴 옆 사람을 씌워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묵주기도와 성체거동을 하는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사랑,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체험했습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날 예수님 안에서 한자리에 모인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풀, 귀한 양식을 얻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 안에서 누구라도 하나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예수님 안에서 풍요로운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 안에서 참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안에서…. ●
이세영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