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오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절제 수술과 항암치료의 고통이 전화선을 타고 전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작은 소리로 "수사님, 나 죽을 것 같아."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 친구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딱하게도 달리 해줄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친구는 다섯 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지만 언제 다시 그런 고통이 찾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에서 우러나온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번 걸리면 사회에서 격리되고 죽음의 삶을 살다가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당시로서는 천형과도 같은 나병을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자신 있게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느 만큼입니까? 자신 있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믿음입니까? 마리아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에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우리 모두 마리아의 이러한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고진배 수사(마리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