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라는 속담들,
아주 가까이 두고 있으면서 잊고 지내는 하느님을 빗댄
속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마이스터 엑크하르트의
‘외출한 자는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늘 가까이 집에 계신 하느님놔두고
엉뚱한 밖에서 하느님을 찾는
어리석은 인간을 빗댄 말입니다.
‘하느님은 나보다 더 가까이 계시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또 하느님은 인간과 숨바꼭질을 하는데
하느님은 자신을 사람 마음 속 깊이 숨겨 놓았다는
어느 일화도 흥미 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주보다 광활한, 깊고 넓은 마음의 심연입니다.
이 무한한 심연을 채울 수 있는 분은 무한한 하느님뿐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런 마음의 심연은
끝없는 허무의 어둠일 수 있지만,
믿는 이들에겐 하느님의 현존의 충만 일 수 있습니다.
사실 허무의 어둠처럼 보이는 마음의 심연도,
깊이 잘 들여다보면
곧 그 중심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의 빛으로 충만한 마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여 하느님의 내재와 초월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됩니다.
마음 깊이 내재할수록
역설적으로 초월적인 하느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신비가들 대부분의 공통적 체험이기도 합니다.
이런 진리를 깊이 체험한 분이
바로 우리 구세주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아버지와 완전히 하나 된 예수님 자신에 대한 고백입니다.
사도들 역시 똑같은 체험 중에 살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 있는 사도들이요
사도들 안에 계신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바로 이 부활하신 주님과의 일치의 삶이
온갖 박해 중에도 기쁨과 성령 충만한
복음 선포의 삶을 가능하게 했음을 봅니다.
매일 미사의 은혜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를 모심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 살게 됩니다.
바로 여기 주님과 하나 된 삶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쁨에 성령 충만한 삶이요,
이 일치의 상태에서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모든 것들을
주님은 다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