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아마 서품을 받은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일 것입니다.
보좌신부 생활을 끝내고 부산 시내 어느 본당의 주임신부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렇하듯이,
처음 본당을 맡아서 일을 시작할 때는 열의가 있고,
사명감에 꽉 찬 생활을 합니다.
서로 아끼고 화목한 본당 분위기를 이루기위해
냉담하고 있는 교우나,
혹은 다른 교우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는 교우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날도 이러한 교우들을 방문하면서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리라
몇 집을 방문한 뒤에,
마지막으로 가장 대화하기가 어렵다는...
소위 고집불통이라는 교우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어떤 사람과도 대화가 안되는 노인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노인을 그냥 외면해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 끝에...
본당 수녀님 두 분과 함께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녀님 한 분은 나보다 키가 조금 더 크신 분이었고,
또 한 수녀님은 좀 뚱뚱한 편으로 겁이 아주 많으신 분이었다.
노인이 살고 계시는 집은
주인의 성격을 닮았음인지...
을씨년스럽다 못해 살벌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대화를 하기위해 애를 쓰고 있는 중에
그 노인은 나에게 무슨 감정을 느끼셨는지?
대뜸 험악한 욕설과 함께 주먹으로 나를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겁많고 뚱뚱한 그 수녀님이 노인과 나 사이에 뛰어들면서
노인을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나는 그때 불쾌하다거나, 겁에 질렸다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겁많은 수녀님의 행동에서
순간적으로 느껴진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제일 먼저 달아나고 말았을 겁장이 수녀님의
어설픈 용기에 웃음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폭력 앞에서...
그리고 그것을 막을 사람은 우리 셋 중에 나밖에 없는데...
가장 겁이 많은 그 수녀님이 앞장을 선 것입니다.
어쨌던 일을 무사히 잘 마무리짓고 돌아오면서
우리 셋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용기로 그렇게 했는냐고...
다른 수녀님과 함께 그 겁장이 수녀님을 놀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녀님의 말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고집불통이고 배우지 못하신 노인이라 할지라도
신부님께 감히 그럴 수가 있느냐!' 는 것입니다.
신부님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구타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신부님을 털끝하나 다치게 할 수는 없다는 각오였다는 말입니다.
나이도 어린 그 수녀님의 말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서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몸가짐에
반성의 기회를 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사목을 한답시고,
아무하고나 어울려서
아무데나 드나들었던 나의 정열은...
평범한 남자의 것 이상이 못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진지한 사제라기보다는,
그저 쉽고 얄팍하게 살아가는 소인과
어떤 점도 다를 바가 없다는 마음 아픈 반성을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사제상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모욕을 당한다든가 멸시를 당해서는 안되는
당신들의 소중한 목자이기를 바라는데...
목자인 나 자신은
내 자신을 너무 함부로 굴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나는 그 후,
나 자신의 옷차림이나 행동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목적 활동이라는 것도,
점검을 하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되면서
사제에 대한 존경심이라든지, 아끼시는 마음이
당사자인 우리 사제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사제로서...
내가 나 편한대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하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나의 인간적인 개인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치마 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