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위대한 정치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제1,2차세계대전과 세계사적 사건을 겪으며 사회적 악과 폭력을 사상적으로 분석하고 통렬히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1960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아이히만은 히틀러 치하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유다인 학살을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수행했던 사람이다.
당시 법정에 선 아이히만한테서 사람들이 보려 했던 것은 야수와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는 그저 평범한 가장이요, 자상한 남편이요, 충실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월급을 받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충격적인 아이히만의 모습에 아렌트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아이히만의 문제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무사유'의 사람이라고 아렌트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무사유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깃들 수 있는 '평범한 악'이라고 말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슬펐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그렇게 슬프게 했을까? 예수님이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의심해서였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예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30)라고 고백했지만 곧이어 예수님이 수난을 예고했을 때 그분을 꼭 붙들며 반박했기 때문에 사탄이라고까지 비난받은 적이 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삶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던 경험이 있기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을 향한 사랑이 구체화되도록 세 번의 말미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삶 안에서 얼마나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까? 생각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사유의 신앙, 무사유의 사랑은 위선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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