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소외받고 고통 받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겠다는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갖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이들을 교회 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복음정신으로 무장하여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시작한 이 같은 열정이 여러 모양으로 다가오는 도전 앞에서 쉽게 식어버리기도 한다. 특히 ‘~을(를) 위하여!’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달동네 공부방 사도직을 시작할 당시 오래전부터 그 일을 하고 있던 한 자매를 알게 되었다. 그 자매는 공부방 가까운 곳에 살면서 가정이 해체되어 심리적·정서적·육체적으로 아픈 아동·청소년을 자식처럼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자매한테서 아이들과 살게 된 배경과 삶의 자세에 대해 듣고, 또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우리 공동체는 열악한 환경 속에 사는 달동네 아이들, 골목과 시장을 누비며 지내는 아이들을 모아 공부방을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우리한테 고마워하고 든든해하리라고 은근히 기대했다. 그런데 하루하루를 더해 가면서 그것은 오직 우리의 기대일 뿐, 아이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은혜를 고마워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녀석들이 괘씸하고 밉기도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자매는 넌지시 “이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이지요. 무엇을 바라세요? 아이들만을 위해서인가요? 하지만 빠진 독에서도 콩나물은 자란답니다.” 라고 말했다. 복음정신으로 살겠다고 해놓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깨닫게 해준 지적이었다.
김희경 수녀(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 |